영성원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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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자를 찾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 /창조절 첫번째주일,

  • 이은아 목사
  • 2025-09-05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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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5.20.178.30

"잃은 자를 찾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 /창조절 첫번째주일,

 

예배 전 찬양: 당신이 지쳐서 외

https://youtu.be/pEbVPpzGd0U?si=EQLJ04KNlbuY5qra

 

 

예배의 부름 (Call to Worship)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창조절 첫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그 속에 있는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며,

특별히 작고 연약한 자, 잃어버린 자를
끝까지 찾으시는 창조주의 마음을 우리가 다시금 되새기는 날입니다.

이 작은 자 중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태복음 18:14)
주님은 말씀 가운데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작고 소외된 영혼들을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이 예배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음을 낮추어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작은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 그 사랑 안에 거합시다.
이제,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로 나아갑시다.

 

주일예배 공동기도문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

창조절의 첫 주일,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예배드릴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주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모든 생명을 다시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여전히 크기를 따지고, ‘높은 자리를 구하며,

작고 연약한 자, 잃은 자를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공을 좇아, 주님의 시선을 외면하고,

내 주변의 작은 자들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렸던

우리의 교만과 무관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하셨거늘,

우리는 아직도 어른 행세를 하며

판단하고, 경쟁하며, 자랑하려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가 주님 앞에서

다시 작은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겸손히 엎드려,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고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우리 예수참영성원이

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작은 자를 영접하고, 잃은 자를 찾아가는

천국의 모형이 되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가장 낮은 자리로 임하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겸손히 섬기며, 서로를 귀히 여기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살아 있는 제자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주님의 마음을 품고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영혼과 육체에 하늘의 새 힘을 부어주시고,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성령의 권능으로 감화와 회개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의 인격과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그 모든 사역 위에 하늘의 기름부으심이 충만케 하옵소서.

 

주님, 이제 예수참영성원의 건축이 마지막 단계에 있습니다.

사람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게 하옵소서.

이 집이 작은 자를 위한 집’, ‘잃은 자가 돌아오는 집’,

예수님이 머무시는 집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고 세우시는 영적 처소가 되게 하옵소서.

 

또한, 이 사역을 함께 짊어지는 동역자들 위에

주님의 평강과 공급하심이 넘치게 하시고,

보내시는 손길들기도로, 물질로, 마음으로 후원하는 손길들이

하늘의 은혜로 연결되고, 기적처럼 만나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주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무능함과 부족함을 주님의 전능하심으로 덮어주시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이 땅에 실현되는 성령의 공동체,

예수님의 몸된 교회로 우리를 세워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작은 자를 찾아오시고, 끝까지 사랑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 성경말씀 (개역개정)

[마태복음 18: 1~14]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 설교

 

"작은 자를 찾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

 

 

서론: 말씀 연구

1. 예수님의 제자도 교육, ‘어린아이로 돌아가라

마태복음 18장은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궁금증을 넘어, 그들의 내면에 자리한 위계 중심적 신앙’, ‘세속적 크기의 기준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놀라울 정도로 급진적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18:3)

예수님은 위대한 자리에 오르기 위해 경쟁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뒤집어버리십니다. 천국의 문은 작아지고 낮아지는 자,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그분의 창조 목적이 있습니다.

2. ‘작은 자의 가치와 창조 세계의 원형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 (18:5) 주님께서는 단지 아이를 상징으로 쓰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찮게 여겨지는 자들, 작고 연약한 자들, 교회 공동체 내에서 소외된 자들이야말로 천국에서 가장 큰 자로 여겨져야 한다는 가치를 심어주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창조절 첫 주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그분의 뜻을 회복하는 절기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크고 강한 자를 위한 세계가 아니라, 약하고 작아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존귀하게 대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창조질서의 본질은 관계 속의 사랑과 회복입니다.

3. ‘큰 사람이 되려는 세상과의 충돌

오늘 우리는 크기에 집착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떤 교회가 더 크냐?”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느냐?” “나의 자녀는 얼마나 성공했는가?” 제자들의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이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 (18:6) 주님은 작은 자를 해치는 일을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거스르는 거대한 반역으로 여기십니다. 이러한 표현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뜨거운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주권: 작고 잃은 자를 위한 열심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8장 후반부에 나오는 잃은 양의 비유는 바로 이 메시지의 클라이맥스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으러 가지 않겠느냐?" (18:12)

우리는 여기서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성품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큰 무리, 성공한 자, 강한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잃은 자, 낙오한 자, 작고 보잘것없는 자의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이 창조의 본심이고, 구원의 본질입니다.

5. 신령한 복: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하시는 은혜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과연 누구를 작은 자로 여기며 살아왔는가? 나의 시선은 주님의 시선과 같았는가? 창조절의 시작,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금 회복을 명령하십니다. 창조의 목적인간이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 바른 관계 안에 살아가며,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6. 창조의 목적은 잃은 자의 회복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비유는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창조의 하나님, 구속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이 지금도 잃은 자를 찾고 계신다는 복음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그 하나님을 본받아, 잃은 자를 찾는 공동체, 작은 자를 존귀히 여기는 교회, 린아이처럼 겸손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본론: 현실 적용

1. 잃은 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작은 자”, “잃은 자는 단순히 나이 어린 자녀들이 아닙니다. ‘작게 여김을 당하는 모든 자’, ‘공동체에서 소외되거나 잊힌 자’, 그리고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세상 속에서 잃은 자는 누구입니까? 매주 예배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방황하고 있는 성도, 자녀의 방황 앞에 눈물 흘리는 부모, 교회 안에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청년, 코로나 이후 다시 돌아오지 않은 교우들, 가난과 병으로 신음하는 이웃들그들이 바로 잃은 자”, “작은 자입니다.

2. 내 삶의 작은 자

50의 나이가 되도록 목회를 하면서 누가 작은 자인가 고민을 계속했습니다. 교회도 돈이 많고, 명예가 높은 분들을 더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사실 가난하고 지식도 없고 힘들게 사는 이들을 경시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대로 힘없고 무시 받는 교우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있었습니다. 돈은 많지만 자녀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하는 부모, 명예는 있지만 질병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 고민이 없고,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이 필요 없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실 모두가 작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부유하고 똑똑하고 명예 있는 사람이 교회와 목회자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그런 분들을 더욱 귀하고 가까이 하겠지요. 그러나 교회의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더욱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에서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작은 자, 소외된 자를 도움으로 비로소 온전한 교회로,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머무시는 교회로 비로소 서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한 몸입니다. 누가 가난하고 소외되었다면 바로 나의 한 구석이 소외되어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이웃의 작은 자와 소외된 자를 도울 때 우리는 내가 온전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3. 우리의 시선은 누굴 향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교회 안에서 누구를 보고 있습니까?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까? 직분이 높은 사람입니까? 언변이 화려하고 카리스마 있는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작은 자를 보라고 하십니다. 그 아이, 그 조용히 뒤편에 앉아 눈물 흘리는 성도, 그동안 교회에서 말 한 마디 못하고 예배만 드리던 자매, 지금도 의심과 상처에 흔들리고 있는 청년. 그들이 천국에서는 가장 큰 자라고, 하늘의 아버지가 가장 먼저 그를 찾는다고 하십니다.

4. 창조의 목적은 연결과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피조세계와의 관계. 그 모든 관계가 깨어졌을 때, 하나님은 다시금 잃은 자를 찾는 목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따라서 창조절의 핵심은 단지 세상을 잘 보존하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자를,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회복시키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 절기를 지키는 이유입니다.

5. 비유로 보는 오늘의 교회

한 마을에 불이 난 집 한 채가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집에는 다섯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네 명은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소방관이 도착했을 때, 불타는 집 안에 아직 어린아이가 한 명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 소방관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네 명은 살았으니, 괜찮습니다. 남은 한 명 때문에 저 위험한 불 속에 다시 들어가야 하나요?” 여러분, 말이 됩니까? 그 아이가 내 자녀라면, 내 동생이라면, 우리는 불속으로라도 들어가 그를 끌어내려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셨습니다. 하늘의 안전을 떠나 불타는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잃은 한 사람,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누군가가 교회를 떠나도, 누군가가 예배에 나오지 않아도, 누군가가 믿음에서 떠나도괜찮아, 나만 믿음 지키면 되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6. 나 또한 잃은 자였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본래 잃은 자였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삶의 목적이, 그리고 영혼이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를 찾아오신 분이 계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기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은혜가 기억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도 그 예수님을 닮아 잃은 자를 찾는 사람”, “작은 자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교회 안에서 작은 자를 영접하고 있느냐?” “잃은 자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을 네가 만들고 있느냐?”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결단해야 합니다. “주여, 나도 작은 자를 찾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도전과 결단

1. “너는 아흔아홉 마리와 함께 있는가, 아니면 잃은 양을 찾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안전하고 익숙한 신앙의 울타리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잃은 자를 찾아 나선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8:14)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단 하나입니다. “작은 자 하나라도 잃지 않는 것그러나 교회는 때로 이 말씀을 망각합니다. ‘우리끼리의 신앙, ‘아흔아홉 마리중심의 시스템, ‘찾아가는 사랑보다는 기다리는 경건으로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배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길을 잃은 그 한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2. “작은 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본문 6절은 우리를 떨게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리라여러분, 주님의 말씀은 농담이 아닙니다. 그만큼 작은 자 하나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무한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을 방치한 적은 없습니까? 교회에서 자주 보이지 않는 성도를 무심히 넘기지는 않았습니까? 청년이 실족했을 때 요즘 애들은 원래 그래라고 말하며 무관심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작은 자 하나의 실족을 나의 책임으로 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제자도의 삶입니다.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잃은 자를 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3. 교회의 가장 큰 죄는 무관심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범하는 가장 흔한 죄는 음란도, 탐욕도 아닙니다. ‘무관심입니다. 잃은 자가 교회 안에 있어도, 죄 가운데 방황하는 자가 있어도, 우리의 반응은 너무나 무덤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아니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도 잃은 자였다. 너도 작은 자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관심과 기도로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 그 한 사람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자도의 시작입니다.

작은 자에게 무관심하면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작은 자에게 무관심하니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작은 자를 돕고 함께하면 여러분에게 기쁨과 행복과 형통함이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 안에 우리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4. 불타는 지옥보다 더 두려운 것

본문 8~9절은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전합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예수님의 어조는 강렬합니다. 왜일까요? 영혼을 잃는 것, 그것은 지옥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자를 실족시키는 것, 그 영혼을 외면하는 것,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것은 주님 앞에서 영원한 불과 같은 심판을 가져올 수 있는 엄중한 문제입니다.

5.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 지금도 방치되고 있다

우리는 창조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기억하고,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영혼”, 하나님의 형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지나칩니다가정에서 방황하는 청소년, 신앙에서 멀어진 청년들, 복음 없이 죽어가는 열방의 영혼들하나님의 창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잃은 자를 찾고 계십니다.

6. 도전: 당신은 잃은 자를 찾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작은 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 “너는 교회에 있지만, 여전히 잃은 자는 아닌가?” 이 질문 앞에서 그저 앉아 있지 마십시오. 주님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로도 잃은 자를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형제를 다시 찾아보십시오. 가정 안에서 멀어진 가족을 위한 회개의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앞에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아흔아홉 마리 안에만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잃은 자 하나를 찾는 목자의 마음을 품겠습니다. 작은 자를 실족시키는 자가 아니라, 작은 자를 영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결론

1. 창조절의 삶: 작은 자를 향한 시선 회복

창조절은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시기만이 아닙니다.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교를 준비하겠습니다. 창조절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 그중에서도 작은 자 한 사람을 향한 시선을 회복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내 형상대로 지은 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
너는 지금 잃은 자 하나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느냐?”
너의 삶 속에 작은 자를 위한 자리는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창조의 사명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고 그처럼 다른 존재들도 사랑하고 돌보는 삶입니다.

2. 구체적인 적용 방안: “잃은 자 찾기 3가지 실천

첫째, 마음속에 작은 자한 사람을 품으십시오
오늘부터 여러분의 마음에 한 사람의 이름을 품으십시오교회를 떠난 가족, 방황하는 청년, 시험에 들었다며 멀어진 지체그 한 사람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기도하고, 한 번은 연락하고, 한 번은 찾아가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우리 공동체 전체를 살리시는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둘째, ‘작은 자를 위한 자리에 참여하십시오
교회에는 작고 연약한 자들을 위한 사역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새가족을 돕는 자리, 청년들을 섬기는 중보 기도팀, 몸이 불편한 성도들을 위한 봉사팀,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부서. 여러분이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작은 자는 영원히 교회 안에서 자리 잃은 자로 남습니다. 한 명의 따뜻한 관심이, 한 명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자신의 작은 자됨을 인정하십시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를 아흔아홉 마리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 모두는 본래 잃은 자”, “작은 자였습니다. 주님의 은혜 없이는 이 자리에 올 수 없었고, 누군가의 눈물 어린 기도 없이는 오늘의 믿음도 없습니다. 자신을 작은 자로 여기는 사람만이, 작은 자를 품을 수 있습니다.

3. 실천적 제자도: 낮아지는 자리로 걸어가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자 하거든,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니라.” (18:4)
여러분, 진정한 제자도는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입니다. 자기를 주장하기보다, 다른 이의 연약함을 덮어주는 삶, 교회 안에서 드러나기보다 감춰진 자리에서 섬기는 삶, 이것이 주님의 길이며, 우리를 천국의 큰 자로 만드는 은혜의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닮은 삶입니다. 그리고 작은 자를 돌보는 교회, 그곳이 진짜 큰 교회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들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이렇게 결단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오늘 제가 작은 자를 품겠습니다. 잃은 자를 찾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삶에 주님의 창조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작은 순종의 걸음을 떼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결단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 직장, 교회, 그리고 이 나라 가운데 창조의 회복, 천국 역사, 구원의 능력을 이루실 것입니다. 아멘.

 

? 결단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작은 자를 잊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에게도 부어주시옵소서.
우리가 찾지 않은 그 한 사람을 주님은 찾으셨고,
우리가 외면한 그 영혼을 주님은 품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그 사랑을 본받아,
작은 자를 영접하며
잃은 자를 위하여 눈물 흘리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
오늘도 우리 삶 속에서 생명을 살리고
관계를 회복하며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제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침의 기도

 

 

찬양

[어린이찬양] 나의 소망 예수님

https://youtu.be/FSq2K7eQAO8?si=CSmDFZbbJZmRNrmP

[찬송가 473] 괴로움과 고통을

https://youtu.be/2tky71KwC8M?si=dpK_UzrbNZJBmTPv

[복음성가] 약할 때 강함 되시네

https://youtu.be/KN3c1OMenAQ?si=4LrqwHmHwB8rTUmu

 

 

 

[복음성가] 잃은 양과 예수님

https://youtu.be/23zc9hR4Dp4?si=idillZe15rHaSWBL

 

 

 

■■■ 축도

이제는 작은 자를 찾아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잃은 자 하나라도 잃지 않으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작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안에 부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시고 위로하시며 감동케 하시는 은혜가,

오늘 예배드린 주의 백성들,

자신의 작은 자 됨을 고백하며,

작은 자를 찾고 품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하는 모든 이들 위에,

그들의 가정과 자녀와 직장과 교회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주기도문]

(송영) 주 너를 지키시고 https://youtu.be/MYj3XF2Qf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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