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말씀으로 행복하고 온전해지는 예수참영성원
주일오전 10시, 예수참영성원에 오시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 전 찬양: 지나 충만 외
https://youtu.be/HHzX5yN7sGI?si=jKUSMXebuvKeF8jA
■ 종소리 3번
■ 예배의 부름 (Call to Worship)
오늘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
오늘 이 예배는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고,
죽음의 냄새가 걷히고 생명의 향기가 피어나는
거룩하고 웅장한 잔치입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과
의심의 돌문을 열어젖히고,
우리를 무덤에서 이끌어내시는
생명의 주님께 기쁨과 감사로 찬양하며 나아갑시다.
이제,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과 뜻을 다해 예배를 드립시다. 아멘.
■ 예배찬양
[찬송가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https://youtu.be/ElOj3HTiLUY?si=eMz-FsEtKxgo_HPF
■■■ 📖 성경말씀 (개역개정)
[요한복음 11:25-26]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특별찬양
[성경찬양] 부활한 나는 어떤 모습일까?
https://youtu.be/DpquoHyOkDQ?si=Sxx397nP6T4GFnI
■■■ 설교
사순절 둘째주일/ 예수님의 에고 에이미 6강
살고 잡소? 예수 믿으믄 다 해결된대이!
예수 십자가의 크신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여섯 번째 자기선언, '에고 에이미(I AM)',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사순절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함께 걷는 굳센 힘을 얻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보시고 아마 피식 웃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고 잡소? 예수 믿으믄 다 해결된대이! 믿기만 허쇼잉." 좀 투박한 사투리지만, 이 안에는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복잡한 이론 다 내려놓고, 그저 생명이신 예수님을 꽉 붙들라는 절박한 호소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베다니입니다. 그곳에는 죽음의 냄새가 가득합니다. 나사로가 죽었고, 장례가 치러진 지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시신은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고, 남은 가족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때 마르다가 뒤늦게 오신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
이 말은 단순한 슬픔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만약에(If only)'라는 후회의 감옥입니다. "주님이 그때 계셨더라면...", "내가 그때 돈을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건강 관리를 더 잘했더라면..."
우리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만약에'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까? 특히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4050 세대, 치열하게 살았지만 남은 것은 번아웃과 허무함뿐인 분들이 계십니다. 열심히 돌을 굴려 인생을 살았지만, 어느새 경제적 파산, 자녀 문제, 건강의 악화라는 거대한 돌문이 쾅 닫혀버린 것 같은 상황. 마르다의 탄식은 오늘 우리의 탄식입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은 그 '만약에'의 후회를 '지금 살아나는' 역사로 바꾸시려 하십니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그 현장 한복판에서, 주님은 당신의 여섯 번째 자기선언, '에고 에이미(I AM)'를 선포하십니다.
1. 미래가 아닌, 현재 부활하신 예수님를 만나라.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의 신앙은 훌륭합니다. 정확한 교리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믿음은 '먼 미래'에 가 있습니다. "지금은 망했습니다. 지금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먼 훗날, 천국 가면 좋아지겠지요." 이것이 마르다의 한계이자,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의 신앙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죽어서 가는 천국의 이야기로만 가둡니다. 오늘 당장 내 부부 관계가 죽어가고, 내 사업이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부활 신앙이 그 현장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수님은 신앙의 시제를 '미래'에서 '현재'로, '교리'에서 '인격'으로 끌어당기십니다. 오늘 본문 25절과 26절을 보십시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주님은 "내가 부활을 줄게"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곧 부활이다(I AM the Resurrection)"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부활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아닙니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금 내 곁에 계시다면, 부활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내 고통의 현장에 부재(Absence)하신 것 같아 괴로워합니다. "나사로가 죽어갈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침묵은 거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그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해결책보다 더 큰 하나님의 영광, 더 본질적인 생명을 잉태하고 계신 시간입니다. 주님은 단순히 병을 고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죽음 자체를 박살 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2: 죽음의 현장에서 생명이 살아나는 능력
그렇다면 "예수님이 생명이다"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죽음의 조건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기억하십니까?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도덕이나 윤리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예수 생명'이 너무나 강력해서, '증오'라는 죽음의 세력을 삼켜버린 것입니다. 여수 애양원에서 나병 환자들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던 그 사랑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가 그 안에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총구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죽음이 내 안에 있는 생명을 죽일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생명인게로 나는 죽어도 사네!" 이것이 진짜 부활 신앙입니다.
나치 수용소의 지옥을 경험한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벼룩이 들끓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수용소라는 거대한 무덤 속에서도 "주님이 여기 계신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을 고문했던 간수를 만났을 때 그녀는 그를 용서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아무리 깊은 구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이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음의 환경을 환경으로 보지 않고 사명지로 봅니다. 초대교회 시절, 전염병이 로마를 휩쓸 때 사람들은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생명이다"라는 믿음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력'에 경악하며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부활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죽음 곁에서 빛나는 삶의 방식입니다.
3: 믿고, 돌을 옮겨라
이제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 있는 분이, 왜 그깟 무덤의 돌문 하나는 직접 열지 않으실까요? 말씀 한마디면 돌이 산산조각 날 텐데 말입니다. 여기에 영적인 비밀이 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행하시지만, 돌을 옮기는 순종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돌은 무엇입니까? "이제 끝났어"라는 경험적 포기의 돌입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라는 이성적 합리주의의 돌입니다. "내 남편은 절대 안 변해", "내 인생은 실패했어"라는 부정적인 자아상의 돌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돌을 치워라. 네가 할 수 있는 순종을 해라. 그래야 내 생명이 네 삶으로 들어갈 것 아니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라'고 그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부르셔야만 했다. 만약 그냥 '나오라'고만 하셨다면 무덤에 있던 모든 시체가 다 걸어 나왔을 것이다. 그분은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실패의 무덤, 우울의 무덤, 고독의 무덤 속에 웅크리고 있는 여러분을 향해 "00야, 나오라!"고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에 우리가 돌을 옮길 때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인 '고독사'를 보십시오. 물리적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살아있으나 잊혀진 '사회적 죽음'입니다. 우리가 돌을 옮겨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소외되고 죽어가는 이웃의 돌문을 열고, 그들에게 생명의 밥 한 끼,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부활 사건입니다.
결론: 믿기만 허쇼잉!
말씀을 맺겠습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죽음보다 강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 죽음보다 강한 것은 예수 생명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면 나는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덤의 돌은 이미 굴러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이렇게 실천해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첫째, 매일 아침 3분간 선포하십시오. 여러분이 포기했던 그 문제, '죽었다'고 생각한 그 관계를 향해 "주님, 이곳에 생명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둘째, '생명의 언어'를 쓰십시오. "죽겠다, 안 된다, 끝났다"는 말 대신, "주님이 생명이십니다",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루 5번 이상 가족에게 말하십시오.
부활의 몸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프지도 늙지도 않고, 하나님처럼 사랑하며 자유로운 모습일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미래가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의 영광을 '오늘'로 끌어와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저기 전라도나 충청도 어르신들이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 속에 진리가 있지 않습니까?"보쇼잉, 세상이 다 끝났다고 씨부려싸도, 우리 예수님이 '내가 생명이다!' 해부러야 끝나는 거여요. 오늘 그분만 믿고 저 무덤 돌덩이를 확 밀어내 버립시다잉!"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이 역설적이고도 위대한 생명의 신비가 사순절을 보내는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위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생명의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늦었다"고, "냄새가 난다"고 포기했던 우리의 삶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믿습니다. 부활이 먼 훗날의 교리가 아니라,
오늘 내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인격적인 만남임을 믿습니다.
우리 마음을 막고 있던 불신앙의 돌을 옮겨 놓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이신 주님, 못 자국 난 손으로 우리를 만져 주시옵소서.
나의 친구여, 무덤에서 나오라 부르시는 그 음성 따라, 어둠을 털고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결단 공동기도문
(잠시 침묵하며 우리의 근심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생명과 부활의 예수님,
이 시간 우리의 무너진 심령을 안고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우리는 자주 마르다처럼 "그때 주님이 계셨더라면,”
“그때 내가 다르게 선택했더라면"이라는 '만약에'의 감옥에 갇혀,
과거의 후회와 절망 속에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부활을 그저 먼 훗날의 이야기로만 여기며,
당장 내 삶의 죽어가는 문제들 앞에서는 무기력했던
우리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우리의 절망 한복판에 찾아오셔서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 선언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제는 "끝났다"고 포기했던 우리 인생의 무덤 앞에서,
순종의 마음으로 불신앙의 돌문을 굴려내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예수 생명이 살아 숨 쉬게 하사,
질병과 실패, 관계의 단절이라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오늘 여기서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지금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울지마라! 내가 여기 있다.”
“믿음으로 돌을 옮겨라. 그래야 예수 생명이 들어가신다.”
“죽음의 허공 속에서 하나님께 몸을 던져 부활의 영광을 얻으라.”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살 수 있다. 살 수 있다.”
“생명의 주가 들어가시면”
“네가 다시 살리라” “네가 다시 살리라”
“나의 친구여! 무덤에서 나오라!”
“나의 친구여! 무덤에서 나오라!”
그 역사가 오늘 우리 삶에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 역사가 오늘 우리 삶에 일어나게 하옵소서.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하옵기는, 이 예배를 드리는 예수참영성원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영성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상처 입고 고독한 영혼들이 이곳에서 생명의 주님을 만나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하시고,
세상의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는 생명의 통로,
축복의 마중물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부활의 소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봉헌찬양/ 내 안에 사시는 부활의 예수
■ 봉헌기도
우리의 소중한 마음을 담아 봉헌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의 봉헌자 (이*아. / 2026년 2월 28일까지)
[봉헌 기도]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벅찬 감사와 사랑을 담아 귀한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믿음으로 구별하여 드린 감사헌금과,
남모르는 눈물과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담아 드린 소원헌금을 기쁘게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바쳐진 예물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채워주사,
저들의 삶에 "죽어도 살고 살아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의 능력이 매일 경험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 예수참영성원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한 후원금과 후원물품을 나누어 주신 손길들을 축복합니다. 그들의 창고가 마르지 않게 하시고, 베푼 것보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은혜로 갚아주시옵소서.
예배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려 섬기는 분들과,
영성원의 사역을 위해 밤낮으로 무릎 꿇는 중보자들의 기도를 들으사
저들의 가정과 일터에 평강이 넘치게 하옵소서.
또한, 공간을 초월하여 유튜브 채널과 홈페이지 사역을 통해
이 예배에 동참하고 말씀을 접하는 모든 온라인 성도들을 축복합니다.
어디에 있든 그곳이 생명의 주님을 만나는 지성소가 되게 하시고,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복음이 저들의 막힌 돌문을 열고
질병과 우울을 치유하는 생명의 빛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결단찬양(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https://youtu.be/JHCcygSTY8c?si=TQGA0TIpIOaKo8X0
■■■ [축도]
지금은 우리의 영원한 부활이요 참 생명이 되셔서
닫힌 무덤의 돌문을 여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한량없으시고 변함없으신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교통, 충만, 위로하심의 역사가,
과거의 후회를 벗어버리고 지금 이곳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 한복판에서 생명의 언어를 선포하며 살기로 결단하는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 머리 위에,
그들의 가정과 일터와 자녀들의 앞날 위에,
그리고 생명의 공동체인 예수참영성원의 모든 사역과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심령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송영]
주 너를 지키시고 (638장)
https://youtu.be/MYj3XF2Qfik?si=Sh10saa0txMuFd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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