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말씀으로 행복하고 온전해지는 예수참영성원
주일오전 10시, 예수참영성원에 오시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 전 찬양: 회개와 죄사함을 간구하는
https://youtu.be/-QQw-l4R7yI?si=cV7f9nx0JW54QALk
■ 종소리 3번
■ 예배의 부름 (Call to Worship)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편 24편 7-8절)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합시다.
세상이 주는 헛된 환호와 유혹을 뒤로하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택하여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 안에서
깊은 감사와 찬양으로 예배로 나아갑시다. 아멘.
■ 예배찬양
[찬송가25] 면류관 벗어서
https://youtu.be/xjxMUWsvv-c?si=X6nM95pbrggqWUPc
■■■ 📖 성경말씀 (개역개정)
[마태복음 21장 8-11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요한복음 11장 53절]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일서 3장 1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이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 특별찬양
[광주교회] 죄짐 맡은 우리 구주
https://youtu.be/acaUEzgCu7E?si=xByBvAvbTWa0D-7L
■■■ 설교
종려주일
종려주일영상 https://youtu.be/bRashEX6VsA
당신을 자녀라 부르기 위해 왕이 치른 대가
왕의 입성과 엇갈린 마음, 그리고 확증된 사랑
하나님의 평화가 오늘도 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온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오늘 기독교 역사상 가장 장엄하고도 비극적인, 그리고 가장 영광스러운 역설이 담긴 절기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바로 고난 주간의 문을 여는 종려주일입니다. 이천 년 전, 유월절 명절을 맞이한 예루살렘은 평소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온 도시는 명절의 들뜬 분위기와 함께, 로마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열망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그 열기의 한복판으로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한 목수가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십니다. 거리는 열광하는 군중들의 환호성으로 진동했지만, 성전 깊숙한 곳에서는 이 환호를 잠재우고 그를 영원히 제거하려는 차갑고도 치밀한 모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은 이 극명하게 엇갈린 두 시선, 즉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며 환호하는 군중의 시선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살기를 번뜩이는 종교 지도자들의 시선을 교차하여 조명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인간의 헛된 기대와 악한 모의를 뚫고 나아가, 십자가라는 철저한 희생을 통해 가장 영광스러운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를 탄생시키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합니다.
군중의 환호 속에 감추어진 영적 착각
첫 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본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환호했던 무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21장 8절에서 11절의 말씀입니다.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감람산을 넘어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때, 그분은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 늠름한 군마가 아닌, 평화와 겸손의 상징인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그러나 길가에 도열한 수많은 무리들의 행동과 외침 속에는 예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불타오르는 정치적 열망과 세속적인 기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흙먼지 날리는 길 위에 펴는 행위는 구약 시대에 예후가 왕으로 추대될 때 무리가 보였던 행동과 동일한 것으로, 새로운 왕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헌신을 상징하는 고대 근동의 예식입니다. 또한 그들이 나뭇가지, 특히 요한복음의 기록에 나타난 대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드는 행위는 매우 강력한 민족주의적 상징이었습니다. 주전 2세기 마카비 혁명 당시, 시리아 군대를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탈환했던 시몬 마카베우스가 성전에 입성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흔들었던 것이 바로 이 종려나무 가지였습니다.즉,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해방시켜 줄 제2의 마카비, 강력한 정치적 혁명가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리가 목청껏 외친 호산나(Hosanna) 라는 환호성 역시 그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대변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원어인 시편 118편 25절의 הוֹשִׁיעָה נָּא(호시야 나, Hoshiya na) 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본래적 의미는 "이제 구원하소서" 혹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 선지자가 자신들을 가난과 질병, 그리고 로마 제국의 가혹한 세금과 억압으로부터 지금 당장 구원해 주기를 간절히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군중의 심리 저변에는 치명적이고도 비극적인 영적 착각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강해 설교자인 존 맥아더 목사님은 이 장면을 강해하시며 다음과 같은 예리한 통찰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없는 하나님 나라를 제안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의 거절로 인해 발생한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창세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랑의 확증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영접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들의 조건과 육신적인 욕망에 부합하는 방식으로만 환영했습니다. 그분이 오병이어로 수천 명을 먹이시는 빵의 왕으로, 병든 자를 고치시는 기적의 왕으로 보일 때는 겉옷을 벗어 던지며 환호했지만, 그분이 무력을 포기하고 죄인들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종의 길을 걸어가시자 그들의 열렬한 환호는 불과 며칠 만에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차가운 저주와 분노로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의 우리 삶에 이 말씀을 비추어 봅니다. 오늘날 교회를 찾는 수많은 현대인들 역시 이천 년 전 예루살렘의 군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할 때가 많습니다. 성공, 건강, 재물, 그리고 세상적인 평안이라는 각자의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칩니다. 예수님이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시고 내 인생의 문제들을 마술처럼 해결해 주실 때는 기쁨으로 찬양하지만, 삶의 고난이 찾아오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침묵의 골짜기를 지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앙을 저버리거나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돌을 던집니다. 이는 예수님을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을 이루어줄 도구로 전락시킨 결과입니다. 우리는 군중의 헛된 기대를 버리고, 주님이 진정으로 걸어가신 그 길의 참된 의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모의와 권력의 민낯
군중들이 헛된 욕망의 성을 쌓고 있을 때, 환호하는 거리의 반대편 성전 밀실에서는 예수님을 영원히 제거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치밀하고도 잔혹한 모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인 요한복음 11장 53절은 이들의 악한 의도가 언제, 어떻게 본격화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이 짧고도 무거운 말씀의 배경에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던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예수님의 역사적인 표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꾼 이 전대미문의 기적 앞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를 장악하고 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곧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이 소식은 복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치명적인 위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민중의 소동이 폭동으로 번져 결국 로마 제국을 자극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종교적 특권과 민족의 알량한 자치권마저 완전히 빼앗기게 될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습니다.
이 구절에 사용된 헬라어 동사 ἐβουλεύσαντο(에불류산토, ebouleusanto)의 원어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들의 악독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감정적 충동이나 우발적인 분노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의결하고, 숙고하며, 치밀하게 계획을 수립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시는 만물의 주관자를, 자신들의 기득권과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합법을 가장한 불법으로 사형에 처하기로 공식 결의한 것입니다.
군중이 자신들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예수님을 배신했다면,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는 종교 전문가들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자리와 권력을 더 사랑했습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지독한 자기애와 권력욕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영적 교만과 이기심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주인 된 삶의 영역을 침범당할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웃을 판단하며 영적인 살인을 저지르는지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장 위대한 확증
인간의 헛된 욕망과 이기적인 살의가 소용돌이치는 바로 그 참혹한 교차로 위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인류를 향한 영원한 구속의 계획을 묵묵히 성취해가고 계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의 본문은 이 놀라운 대속의 신비를 보편적인 신학적 진리로 선포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위대한 선언은 기독교 복음의 심장부이며, 우리 신앙의 영원한 반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그 사랑을 받는 대상이 철저하게 자격이 없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류가 영적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를 넘어,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죄인이자 원수의 자리에 있었음을 명확히 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보십시오. 나를 사랑하고 나의 유익을 구하는 선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일조차도 인간의 역사에서는 극히 드문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바로 그 패역한 원수들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유일하신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여기서 ‘확증하셨느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συνίστη미(쉬니스테미, sunistēmi)는 ‘증명하다, 보여주다, 가장 눈에 띄게 제시하다, 입증하다’라는 강력한 뜻을 지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공허한 감정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없는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외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골고다 언덕의 거친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통해 역사적이고도 객관적인 사실로 명백하게 증명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배신과 음모로 빚어진 비극적인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원수 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치러진 가장 값비싼 대가였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타락한 시선과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이 얼마나 극명하게 대조되는지를 다음의 표를 통해 명확하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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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인간의 시선과 기대 |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목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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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역할 |
빵과 권력을 주는 정치적 해방자 |
대속의 제물이 되시는 고난의 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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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본질 |
억압된 현실과 가난으로부터의 일시적 도피 |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영원한 생명으로의 해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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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의미 |
저주받은 실패와 수치 |
공의의 완성 및 가장 위대한 사랑의 확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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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결과 |
욕망의 좌절로 인한 배신과 영원한 심판 |
부활을 통한 새 생명과 하나님 자녀로서의 회복 |
이 대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구원이 철저히 인간의 행위나 자격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희생적인 아가페 사랑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됩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로마서 5:8'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국 교회사적 실화입니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 안재선을 양아들로 삼은 사건입니다. 안재선은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했던 무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손 목사님은 그를 '자녀'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신 방법의 축소판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인일 때, 우리를 죽이는 대신 당신의 아들을 죽이고 우리를 아들 삼으신 그 마음을 설명할 때 이보다 강력한 예화는 없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신분의 회복, 하나님의 자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온갖 수치와 고통을 당하시며 목숨을 버리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주고자 하셨던 궁극적인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한 형벌의 면제나 죄의 용서를 넘어선,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 로의 완벽한 회복입니다. 요한일서 3장 1절의 말씀은 이 벅찬 진리를 찬양하며 선포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이 구원의 은혜를 설명하면서 어떠한 사랑 ποταπὴν ἀγάπην(포타펜 아가펜, potapēn agapēn) 이라는 매우 독특하고도 놀라운 헬라어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포타펜 potapen 이라는 단어는 원래 '이것이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인가?' 혹은 '어떤 종류의 것인가?'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다가 그 깊이와 넓이에 압도되어 이렇게 감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사랑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이 타락하고 이기적인 세상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는 외계의 사랑,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너무나도 경이롭고 압도적인 사랑이구나!".
이 압도적이고도 측량할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τέκνα θεοῦ(테크나 데우, tekna theou)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 탕자의 아버지가 동네 어귀까지 뛰어간 이유는 돌아온 둘째 아들이 사람들에게 돌팔매질 당할까 봐 본인이 대신 맞으려 함이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희생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탕자를 데리러 가는 아버지의 발걸음 이었습니다.
1세기 로마 제국의 입양법을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 부유한 귀족이나 황제 가문의 자녀로 입양될 경우, 그가 과거에 지었던 모든 빚과 노예로서의 천한 신분은 법적으로 완전히 말소됩니다. 그리고 양아버지의 새로운 생명과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는 완벽한 신분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의 노예였던 우리를 완전히 씻어내어,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법적이고도 유기적인 친자녀로 완벽하게 회복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기적입니다.
이처럼 로마 시대에 '양자 입양'은 매우 엄격하고 영광스러운 법적 절차였습니다. 노예가 주인의 양자가 되는 순간, 이전의 모든 채무는 탕감되고 왕위 계승권까지 갖게 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렀을 때, 로마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황제의 자녀도 아닌 천한 노예들이 "우주의 통치자의 자녀"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신분 회복'의 확신이 로마의 핍박을 이기는 힘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삶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헛된 세속적 기대를 채우러 오신 분이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으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러 오신 분입니다."
한국 교회의 탁월한 복음주의 지도자이셨던 고 옥한흠 목사님은 우리가 회복한 이 위대한 영적 정체성에 대해 강단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역설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교만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만만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란 확신을 가지고 살면, 억울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인생을 역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특권이자 영적 자존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군중들처럼 환호하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억울한 오해를 받으며, 건강을 잃고 재정적인 위기에 처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짙은 어둠의 터널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 된 신자들은 결코 절망의 늪에 영원히 함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도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 확증된 십자가의 사랑이, 지금 자녀 된 우리의 삶을 결코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가치는 그 부모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시골 교회 권사님이 평생을 주의 종으로 살면서도 기뻐했던 이유입니다. "주님이 나를 자녀 삼아주신 것 하나로 족합니다." 헨리 나우웬 목사님은 말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뿐입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환상입니다.” 일본 선교사들이 순교하면서도 끝까지 웃으며 찬양했던 이유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젊은 선교사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가장 행복합니다.”
요한일서 3장 1절 하반절은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세상은 십자가의 숭고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자기희생과 섬김을 선택하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고결한 삶의 방식을 비웃고 조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들은 세상의 썩어질 영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신앙을 타협하지 않습니다. 군중의 헛된 환호에 취해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팔아넘기는 비겁한 세상의 모의에 가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날마다 자신을 쳐서 십자가에 복종시키며, 나를 살리신 그 희생적 사랑을 나의 가정과 치열한 일터, 그리고 상처 입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묵묵히 실천해 나가는 참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이며 주인으로 모신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삽시다. 또한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이 환호할 때 조심하십시오. 주님은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만 반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박수 소리에 춤추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발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환호에 속지 마십시오.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확증(로마서 5:8)을 신뢰하십시오. 음모에 두려워 마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죽이려 해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자녀답게 사십시오. 우리는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을 넘어, 십자가를 통과한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과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요한일서 3:1)
예루살렘 입성은 '죽음을 향한 승리의 행진'입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 입성이 기쁜 이유는 주님이 내 마음 성전에도 왕으로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딛고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세상은 나를 버렸으나 주님은 나를 위해 성에 입성하셨다.” 오늘 종려주일 내 마음의 성전에 왕으로 들어와 계시는 예수님을 기뻐합시다. 나와 세상의 죄값을 대신하여 몰매맞을 각오로 예루살렘의 십자가로 들어가시는 평화의 왕 예수님의 그 깊은 은혜와 사랑에 엎드려 감사하며, 하나님과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이셨던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온전히 서는 거룩한 고난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 결단 공동기도문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헛된 욕망을 따라 군중들과 함께 휩쓸려 살아갈 때에,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그 크신 사랑을 확증해 주시니 가슴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열광하던 무리들처럼 주님을 나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 했던
우리의 어리석음과 탐욕을 이 시간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종교 지도자들의 교만과 이기심이
우리의 마음속에도 숨어 있음을 고백하오니,
성령의 불로 우리의 심령을 정결케 태워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제 우리가 이 세상이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놀랍고도 경이로운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으로 인하여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굳게 믿습니다.
이 자리에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이
이 영광스러운 영적 정체성을 온전히 회복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비난이나 시련 앞에서도 영적인 자존감을 잃지 않고
담대하게 일어서는 십자가의 용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시간 질병과 경제적 고난, 깊은 관계의 아픔으로 남몰래 눈물짓는 성도들에게
이 시간 친히 찾아가 주셔서, 십자가에서 증명하신
그 변함없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위로하여 주시고 완전한 회복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남은 인생의 여정이 나의 알량한 뜻을 이루는 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온몸을 찢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에게 묵묵히 전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거룩한 순례자의 길이 되게 하옵소서.
매일의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함과 희생의 향기를 뿜어내며,
마침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기쁨으로 참예하는
복된 인생들이 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특별히 이 거룩한 은혜의 통로로 세워주신 예수참영성원을 위해 간절히 간구합니다.
이곳이 단순히 건물의 이름을 넘어,
주님의 사랑('ἀγάπη',아가페)이 강수처럼 흐르는 생명의 산실이 되게 하옵소서.
이곳에 발을 들이는 모든 심령이 세상의 헛된 환호를 뒤로하고,
오직 '예수님 말씀 그대로 살아서 행복하고 기적이 일상이 되는'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세상은 기적을 특별한 사건이라 말하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매 순간이 당연한 기적이요, 넘치는 복임을 선포합니다.
예수참영성원이 이 시대의 메마른 영혼들에게 참된 안식처가 되게 하시고,
이곳에서 훈련받은 자녀들이 나가는 곳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영적 전초기지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우리 마음 성전으로의 입성이 되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이번 고난 주간, 우리 모두가 십자가를 통과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으로 무장하게 하시고,
우리가 어떤 고난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했던 순교자들의 그 영광스러운 길을 묵묵히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이시며,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봉헌찬양/ 내 마음에 입성하신 평화의 왕
왕의 대가로 자녀삼으신
■ 봉헌기도
우리의 소중한 마음을 담아 봉헌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의 봉헌자 (**아. / 2026년 3월 28일까지)
[봉헌 기도]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종려주일을 맞아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신분을 주시기 위해
예루살렘의 고난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하나님, 한 주간의 삶 속에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감사헌금과,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담아 정성껏 구별하여 드리는 소원헌금을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또한 예수참영성원의 사역을 위해 물질로 동역하는 후원금과 마음을 다해 보내주신
후원 물품의 손길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으로 충만케 채워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영성원을 가꾸고 예배를 준비하는
모든 섬김의 손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영성원을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리며 기도하는 중보자들의 간구를 들어 응답하시고,
그들의 삶에 주님의 평강이 넘치게 하옵소서.
아울러 시공간을 초월하여 유튜브 채널과 홈페이지를 통해 이 생명의 말씀을 접하는
모든 온라인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그곳이 곧 거룩한 성소가 되게 하시고,
선포되는 말씀이 영혼의 양식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드려진 예물이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곳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하오며,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결단찬양(141장)/ 호산나 호산나
https://youtu.be/_v1rdjyc23s?si=za0WRJABOJgIGycr
■■■ [축도]
지금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사
그 사랑을 골고다 언덕에서 확증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날마다 증언하시며
고난 중에서도 다시 일어설 영적 자존감을 부어주시는 성령님의 내주 교통 충만하심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군중의 헛된 환호를 넘어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로 결단하며,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예수참영성원의 모든 성도들과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하는 권속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송영]
주 너를 지키시고 (638장)
https://youtu.be/MYj3XF2Qfik?si=Sh10saa0txMuFd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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