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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예배/ 수요일/ 성인 이세종1 / 나라를 위한 기도

  • 이은아 목사
  • 2026-04-07 2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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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5.20.178.30

매일예배는 영성원에서 오전7(해 뜨는 시간)에 드립니다.

 

예배 전 찬양: 지나

https://youtu.be/HHzX5yN7sGI?si=GqBbDMramNu9MxhA

 

 

예배종 3

예배시작/ 사도신경

다같이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심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https://youtu.be/EA4biXCpsRQ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할렐루야 우리 예수 (161)

https://youtu.be/YB195ond-t0?si=24wOpRC_jVi83NQK

 

 

 

성경말씀

[누가복음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설교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은 성인들의 삶을 말씀으로 나눕니다.
예수님 말씀 그대로 살았던 성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배우며

우리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말씀대로 사는 은혜의 삶을 실천해 봅시다.

 

성인 이세종 1

 

 

하나님의 평화가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세종(李世鍾, 1880~1942) 선생의 삶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호남의 성자'로 불리며, 철저한 자기 비움과 '성경' 중심의 실천적 신앙을 보여준 독보적인 사례입니다. 오늘은 이세종 선생님의 일대기의 일부를 나누려고 합니다.

 

요약정리

1. 삭개오의 회개를 넘어서는 실천적 배상

이세종 선생이 누가복음 19삭개오 이야기를 읽고 자신의 모든 빚 문서를 불태우며 과거의 사소한 잘못까지 배상한 행위는 복음의 능력이 관념에 머물지 않고 삶의 양식으로 나타난 결정적 장면입니다.

이세종 선생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토색'한 일이 있다면 배상하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부자가 된 후에도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소유를 비워냈는데, 이는 삭개오가 주님을 만난 후 물질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이웃 사랑을 실천한 것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2. 철저한 자기 부인과 그리스도 중심의 삶

이세종 선생이 자신의 이름을 '이공(李空)'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낮추고, 성령의 인도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려 했던 모습'자아'가 죽고 그리스도만이 사시는 삶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3. 말씀 그대로 사는 삶.

이세종 선생의 신앙 세계는 '성경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로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덧붙입니다. 선생의 가르침처럼 성경을 깊이 파고, 그 말씀이 삶의 현장에서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실천되어야 한다는 정신은 현대 신앙인들에게도 여전히 강력한 '계시'적 울림을 줍니다.

4. 케노시스(Kenosis) 신학의 실천: 선생이 이름에 넣은 '빌 공()'자는 '자기 비움'(Kenosis, [kénɔːsis]) 신학을 한국적 정서 안에서 육화한 것으로 추론됩니다. (출처: 한국 기독교 인물사 연구 자료 참조)

5. 수도적 신앙: 그가 보여준 금욕주의와 구제 방식은 초대 교회 사막 교부들의 영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 교회의 외형적 성장 위주 풍토 속에서 본질적인 '거룩함'을 회복하려 했던 자생적 수도 운동의 단초로 평가받습니다.

 

자세한 내용.

이세종은 1880전남 화순군 등광리에서 삼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이름은 영찬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착실하고 정직했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부지런하고 충직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일찍 부모를 여의었기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형님 댁에 같이 살던 그는 28세 때 등광리에서 20여리 되는 청풍면 차동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10여 년 동안 머슴을 살았습니다. 남의 집 머슴을 살면서 혼자 노력하여 한글을 배웠고. 부모대신 형과 형수에게 효도하였습니다. 짚신을 삼아도 제일 좋은 것은 형과 형수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자신이 신었습니다. 성격은 솔직하고 급했습니다. 한 번 자기 비위에 맞지 않으면 천만금이 생긴다 해도 하지 않았고 한 번 결심하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서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산에 나무하라 갈 때에도 그 날 몇 짐을 하리라고 작정했으면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는 나이 30세에 자신보다 16살이 어린 소녀를 결혼식조차 못 올리고 데려와 살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문순희였는데 나이도 너무 어렸지만 아주 무식한 처녀였습니다.

이세종은 후에 자신을 낮추어 부르기 위해 이름대신 (빌공)자를 넣어 이공(李空)이라 불렀습니다. 결혼을 한 이공은 10년 작정을 하고 돈을 모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지게 발이 닳도록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겨울에는 콩 잎사귀 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10년 후에는 등광리 부락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많은 돈을 벌었으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였으므로 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얻고자 무당의 권유로 천태산 중턱에 산당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산당을 짓는 동안 상갓집의 연장은 빌리지도 않았으며, 재료는 제일 좋은 것을 사용했고 샘물은 삼중으로 파서 정한 물을 구별시켰으며, 마당에는 연못을 파고 정원도 꾸몄습니다. 이렇게 산당을 3층으로 준공한 후에 무당과 함께 살면서 제사상을 차리고 정성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무당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하늘같이 받들던 무당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그는 모든 정성이 허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지도나 가르침 없이 혼자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레위기를 읽어보니 거기 나오는 제사법이 자기가 산당에서 차려놓고 지냈던 제사법과 비슷해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계속 읽는 동안, 산당에 열두 제사상을 차려놓고 촛불을 켜고 매일 공을 드렸던 것이 헛수고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며 그등안 자신이 잡신에게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신약성경을 읽는 중에 기독교의 위대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동안 해 온 미신 행위를 모두 버리고 산당에 꾸며 놓았던 것들을 모조리 불사르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잡신을 섬기기에 열심이었던 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데도 정성이 지극했습니다.

 

나이 40세 때 노나복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너무나도 기뻐서 천태산 기슭 바람재 위에 높이 올라서서 아랫도리가 벗어진 줄도 모르고 두 손을 치겨들고 춤을 추며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억조창생 만민들아! 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예수님을 믿은 후 철저히 회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죄를 일일이 떠올리고 모두 배상해 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대로 남의 밭머리를 지나다가 콩잎을 뜯어먹은 것이 생각나면 그 콩밭 주인을 찾아가 죄를 자복하고 그 값을 변상해 주었습니다. 또한 자기 돈과 곡식을 퍼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였습니다. 특히 늙은이와 어린애의 많은 집을 찾아다니며 나누어 주었습니다. 거지나 나그네가 찾아오면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공은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연구하였습니다. 밤에 혼자 앉아 성경을 읽을 때면 ! 그러십니까.”라고 하면서 혼자서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한 구절 읽고 그대로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철저히 믿어야 한다. 죽도 아니도 밥도 아니게 믿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성경에 가르친 대로 실행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1:8)고 하신 말씀을 보고 전도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살던 등광리 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까지 찾아다니며 하루도 쉬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십자가를 만들어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식사도 잊고 전도하였습니다. 한 번 전도하러 갔던 집을 계속 찾아갔기 때문에 한 집을 다니는 데에만 짚신 세 켤레가 닳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누가복음 19장에 나온 삭개오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그는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여 자기에게 빚진 모든 사람들의 빚을 다 탕감해주었습니다. “여기 있소! 당신의 문서 도로 받으시오. 모조리 탕감해 드리는 것이니 안심하시오.” 그는 빚진 사람을 불러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빚 문서를 불질러 버렸습니다. 물건이든 돈이든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공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 마을 안에는 그에게 빚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덕행을 보고 면()에서 그의 송덕비를 마을길에다 세워주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그는 사색이 되어 면사무소를 찾아가 통사정을 하면서 사람의 우언이나 송덕비는 그가 죽은 다음에라야 하는 것이지 산 사람에게 무슨 송덕비를 세웁니까?하면서 자기가 한 일은 그런 비를 세울 일이 못되고 자기의 이름은 세상에 나타낼 만한 것도 못되니 제발 그 비석을 없애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번 눈물로 사정하는 그의 진심을 알고는 할 수 없이 면에서 그 비석을 땅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그가 외출할 때는 반드시 몸에 구제할 돈 얼마와 자기가 사사로이 쓸 돈 얼마를 따로 가지고 다녔습니. 구제를 받아야 할 사람을 만나면 누구라도 주저하지 않고 주었습니다.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첫째는 복음 전도비, 둘째는 세금, 셋째는 남에게 갚을 것, 넷째는 구제비, 다섯째로 접대비로 책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남은 돈이 있으면 그것으로 생활하고, 없으면 굶어 죽는 경우가 있어도 그렇게 쓰라고 했습니다. 남을 구제하는 정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구제는 자기가 쓸 몫에서 떼어내어서 구제해야 참 구제이다. 자기가 먹을 것 안 먹고 해야지, 먹고 입고 쓸 것을 다 쓰고 남은 것을 구제하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 한 벌 준다 해도 자기가 입은 옷이 다 해어져 누더기가 되기까지 입으면서 주어야 참 구제가 된다. 어느 날 거지처럼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마침 마을에서 가장 심술궂고 못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디가? 이리와 봐!” 그 사람은 다짜고짜 그를 끌고 가더니 길가에 있는 나무에다 새끼줄로 꽁꽁 묶어 놓았습니다. “꼼짝 말고 이렇게 있어!” 이런 말 한마디 하고는 자기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나무에 묶어 놓고 간 사나이는 다른 곳에서 자기 일을 보면서 아침에 한 일을 깜박 잊었다가 오후에 그리로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나무에 묶인 채 잠자코 있었습니다. “저런, 왜 풀고 가지 않고 여태까지 이렇게 있었소?” 사나이가 미안해 묻는 말에 매는 것도 법이니, 푸는 법이 또한 있어야 가지요라고 말하면서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박 씨 문중의 어떤 사람이 마을 네거리에서 그를 들어 비석 위에 올려놓고 농으로 여기서 꼼짝 마!라고 했더니 온종일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 자식, 저 자식하여도 그저 ! !” 할 뿐이었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 이젠 내려가도 괜찮을까요?”하며 묻고서 내려왔습니다. 박 씨는 그때 자신의 소행을 몹시 부끄러워하며 훗날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마을을 지나가는데 마을 개구쟁이들이 길을 막고 서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팔을 비틀고 괴롭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그에게 문둥이, 비렁뱅이, 너는 내 아들이다라며 놀려댔습니다. 그래도 그는 묵묵히 지나갔습니다. 이 공은 스스로 반성하기를 사자의 입도 막으신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들의 입 하나 못 막아내서 내게 이런 애매한 말을 듣게 하시는 것인가? 아이들이 나를 문둥이라고 욕하는 것은 몸은 비록 문둥이가 아닐지라도 내 속에 문둥병이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심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비렁뱅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내가 세상 사람에게는 비렁뱅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야 빌어먹으니 옳은 말이다하면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행여 교만이 일어날까봐 길을 다닐 때에는 거의 고개를 숙이고 다녔습니다. 항상 겸손을 실천했고 자기를 높이는 것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옷이나 태도, 심지어는 꿈에서까지도 교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옷도 남보다 좋은 것을 입으면 그 옷이 마음에 교만을 일으켜 어느 새 남을 낮게 보고 멸시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상을 차려 먹지 않고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습니다. 혹시 누가 밥상을 차려와도 마음이 높아진다고 싫어하고, 자기는 죄인이라면서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습니다.

어디를 가려면 먼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살펴보아 어떤 동기에서 가고 싶어 하는가 반성해보고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뜻이라고 느껴져야만 비로소 일어섰습니다. 같은 마을의 어느 집을 찾아 갈 때에도 그랬고, 어디서 유속하게 되는 경우에도 꼭 성령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선 대문에서 발을 멈추고 자기 마음을 일단 반성해 보았으며, 마음에 지금 찾아가는 사람에 대한 사람이 없으면 드러내지 않고 그 길로 발길을 돌려 되돌아갔습니다. 사랑이 없이 누구를 찾아간다면 상대편에게도 자기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령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성령님의 감동이 오는 것인데 이는 누구나 쉽게 받는다. 성령님의 감동은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기 쉽다. 그 다음에는 성령을 받는 것인데 이는 회개하여야 한다. 사람이 햇빛을 받으려면 방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이 자기에게 달렸다. 회개하고 안하고에 따라 성령님은 들어갔다 나왔다 하신다. 그 다음에는 성령 충만을 받는 일인데 이것은 성령님을 완전하게 받는 것이다. 완전하게 받으면 그때는 다시 떠나지 않는다. 이것은 그릇에 물이 가득 담기면 넘쳐흐르는 것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방과 같다. 마음이 거룩한 성전이 되면 성령님이 들어와 계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항상 깨끗이 준비해야 한다. 사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 어두운 행실을 하려고 해도 못하는 법이다. 성령님이 더러움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정과 욕심을 순간순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성령님을 받기 때문에 성령님을 받기 위하여 자기도 애를 써야한다. 그러면서 신자가 건전한 믿음 생활을 하려면 신비, 경험, 지혜, 지식의 네 가지를 겸비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거지가 구걸하건, 반가운 귀빈이 오건 집 식구들이 먹는 것과 똑같이 대접하였습니다. 어떤 때 부인이 화를 내면서 거지를 박대하는 눈치면 아내를 타이르면서 거지도 우리에게 찾아오는 손님이니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성경 말씀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거지가 구걸하러 와서는 평소에 먹는 대로 주니까 너무 형편없는 음식이라며 안 먹고 가는 이도 있었습니다. 때로 거지에게 당신은 혹시 마을 잔칫집에 가서 한 끼라도 잘 먹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만 이놈은 우리 주님의 은혜를 알고 난 후부터는 지금까지 좋은 음식이라곤 입에 넣어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병중에 있을 때, 미국인 노나복 선교사가 지나가다가 소식을 듣고 귤 몇 개를 드리고 간 일이 있었습니다. 회복된 후 몇 개의 계란을 가지고 선교사를 찾아가서 문병 왔을 때에 잘 대접하지 못한 일을 사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을 존대할 줄 알았고, 목사를 험담하는 사람이 있으면 책망했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어느 목사를 험담하는 소리를 듣다가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시오. 그래도 목사님이라면 교인들을 앞에 놓고 가르치는 분이신데 그럴 수 있겠소. 그만 두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고 계속 험담하자 여보시오! 그만 두라면 그만 두지 왜 그러시오. 그런 말은 남의 험담이란 말이오. 남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지 않았소.”하고 말렸습니다.

남들의 칭찬이나 악평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비평에 따라 태도를 달리한 적도 없었고, 언제나 여전히 한 길을 갔습니다. 자기의 명예나 호평 따위는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기의 생활 태도를 성경에 비춰보아 맞느냐 안 맞느냐를 반성할 뿐이었습니다. 남이 자기를 칭찬하는 일이나 존대하는 일은 절대로 싫어하고, 그런 것은 마귀 대접이라 여겼습니다. 칭찬이라는 것은 약자가 받으면 교만이 생기는 법이요, 덕이 장성한 사람이 받을 때는 도리어 괴로울 뿐이라고 하면서, 그러기에 칭찬은 무익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명예 따위는 털끝만큼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고 진리대로 살려고만 애를 썼습니다. 눈 한번 뜨는 것, 발 하나 옮겨 놓는 것까지도 진리가 아니면 하지 않았습니다. 늘 지혜롭게, 솔직하게, 양심대로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솔직했고, 남도 솔직한 것을 좋아했습니다. 솔직하지 않을 땐 책망했습니다. 무엇이나 사실대로 해야지 사람이 일부러 꾸며 만든 것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라고 절대로 금했습니다. 그는 오로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학문은 많이 접하지 못했으나 그토록 유명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적인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누구보다도 성경을 많이 읽었으며,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데 있었습니다.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너 죽는다. 뿌리도 깊이 팔수록 좁다. 좁은 길이다. 깊이 파고 깊이 깨닫고 깊이 믿어라. 어설프게 파면 의심밖에 나는 것이 없다.” 제자들을 앞에 놓고 성경을 연구할 때마다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참 기독교 진리의 세계는 좁은 길이다.” 그는 농부가 밭에서 무 뿌리를 파는 비유를 들면서 신자는 성경을 깊이 파고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자신이 성경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 성경을 거의 통달할 정도였습니다. 낮이면 종일 성경을 읽고, 밤에는 암송을 했습니다. 성경 요절을 밤을 세워가며 암송하고 요지를 표해 놓았습니다. 제자들 앞에서 자기의 손가락을 펴들고 성경에 통달한 사람이야 비로소 손가락 사이로 세상을 내다보게 된다.”고 하면서 남을 가르칠 때는 성경을 눈에 대고 내가 배우고 자기가 자기를 가르칠 때는 성경을 마음에 대고 읽어야 한다. 성경은 마음의 거울이다.”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성경은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밖에 안 보이는 법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이 이렇고 저렇고 말을 하지만 성경을 들고 앉아 말하는 것만 가지고는 다 모릅니다. “신자는 신구약 성경과 찬송가를 늘 읽고 부르되, 그것을 생선으로 비유한다면 구약은 머리 토막과 같고, 신약은 가운데 토막과 같은데 찬송가는 꼬리와 같습니다.”라고도 했습니다. 또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성경은 밥이요, 찬송가는 국과 같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무슨 질문을 한다든지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 곧 성경을 찾아봅시다. 성경 본문 그대로가 참 진리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성경을 공부할 때에는 그의 안에는 신()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누구나 그 앞에 있으면 유리관 속을 들여다보듯 자기 마음에 품은 것을 숨길 수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더욱 두려워했고, 그의 앞에서는 괜히 떠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조심할 데 가서는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조심하지 않아도 좋을 데서는 조심하니 그래선 못 쓴다. 병원을 가면 병을 고치고자 다 털어놓듯이 우리도 서로 털어놓고 고치자는 것이 아닌가?”고 하였습니다.

남에게 바로 말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면서 남이 말씀대로 살지 않거나 잘못된 것은 바로 가르쳐 고쳐주는 것이 참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무나 성경을 읽는다고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하였습니다. 성경을 읽는 태도에 대하여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자에게는 멸망이니라.” 말씀을 인용하면서 정직한 자는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소화시켜 유익을 얻으나, 악인은 도리어 성경에 걸려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우선 자기를 깨끗이 해야 한다. 음란을 멀리하고 양심이 맑아야 성경을 읽어도 모든 것을 바로 깨닫는다.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아무 것도 바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무나 아무렇게 읽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바로 읽으려면 먼저 자기를 깨끗케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며 탐구할 때 남들이 엿들어 보면, 혼잣말로 자문자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그렇습니까?”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공이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더 보고 싶으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s://www.jesusspiritch.com/bbs_shop/read.htm?me_popup=&auto_frame=&cate_sub_idx=0&search_first_subject=&list_mode=board&board_code=sub0606&search_key=&key=&page=&idx=56777

 

기도음악

[1시간] (Jerry Kim)/ 기도음악/ 나의주 나의 하나님이여 외

https://youtu.be/aHL6n5DLDR4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시고 진리의 말씀 앞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배운 바 없던 한 머슴을 불러 '호남의 성자'로 빚으시고,

그를 통해 오직 성경만이 참된 길임을 보여주신 주님의 섭리를 찬양합니다.

 

주님, 이 시간 이세종 선생의 삶 앞에 저희의 부끄러운 모습을 자복합니다.

선생은 콩밭의 콩잎 하나 뜯어먹은 죄까지도 일일이 기억하며 배상하였으나,

저희는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선생은 자신의 이름조차 '비어 있음'을 뜻하는 '이공(李空)'이라 부르며

세워진 송덕비마저 땅에 묻었으나,

저희는 작은 공로 하나에도 칭찬받기를 원했고 남보다 높아지려 애썼습니다.

'죽도 밥도 아닌' 어설픈 믿음으로 살았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형식적인 예배와 입술뿐인 고백을 멈추고,

마음의 거룩한 성전을 먼저 정결케 하는 회개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게 하옵소서.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너 죽는다" 하신 선생의 외침을 가슴에 새깁니다.

성경을 지식으로만 대했던 저희의 교만을 버리고,

말씀을 마음의 거울 삼아 자기를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선생이 손가락 사이로 세상을 내다보며 오직 진리만을 보았듯이,

저희도 성경을 통달하여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옵소서.

성령의 뜻이 아니면 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으려 했던

그 철저한 순종이 저희의 삶이 되기를 결단합니다.

나를 죽이고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시는 비밀을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의 가정이 짚신 한 켤레를 삼아도 제일 좋은 것을 형제에게 주었던

선생의 효심과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일터가 삭개오와 같이 정직하게 행하며,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고 문서를 불태우던 그 배상과 긍휼의 현장이 되게 하옵소서.

길가에서 만난 거지와 나그네를 그리스도처럼 대접하고,

자신을 묶어놓은 자까지도 원망 없이 용서했던 선생의 온유함을 저희에게 허락하옵소서.

사랑이 없으면 발길을 돌렸던 그 마음을 본받아,

오직 진실한 사랑으로만 이웃에게 다가가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땅에 진리의 등불로 세우신 예수참영성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곳이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성경을 깊이 파고 깨달아 실천하는 참된 영성의 산실이 되게 하옵소서.

영성원을 이끄시는 종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시고,

이곳이 세상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거룩한 처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삶이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오직 온유하고 겸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기도

나라를 위한 기도 https://youtu.be/9ZUBn5KdcYA

 

 

 

이후 각자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충분히 묵상하신 후에 주기도문은 개인별로 각자 합니다.

마침기도: 주기도문

https://youtu.be/HwiAbat-WB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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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말씀따라 사는

오후묵상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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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예배는 영성원에서 오후 5(해지기 전)에 드립니다.
오후예배는 주제별로 말씀을 실천하는 묵상의 시간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쉼과 회복과 음성을 듣는 편안한 회복과 소망의 시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예배 전 말씀찬양

예수님 닮은 온전한 모습으로

https://youtu.be/GF9T9OuN2LQ?si=pPyG6st3RyxG15J9

 

 

 

예배종 3

예수님 말씀대로 살기 묵상

비움과 순종 https://youtu.be/k0tO--WyKz4?si=hhozCBaCZVaKmc3I

 

 

 

세상을 축복하는 묵상

하늘처럼 맑고 밝게 하옵소서. / 맑은 하늘을 보며

https://youtu.be/t7IWuKpf9Js

 

 

 

충분히 묵상하신 후에 주기도문은 개인별로 각자 합니다.

마침기도: 주기도문

https://youtu.be/HwiAbat-WBo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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