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말씀으로 행복하고 온전해지는 예수참영성원
주일오전 10시, 예수참영성원에 오시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 전 찬양: 주 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
https://youtu.be/Mqz9Li50A2U?si=mNukoZ_4DzYqm61X
■ 종소리 3번
■ 예배의 부름 (Call to Worship)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편 100편 4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먼저 우리를 발견하시고,
옷자락을 걷어 올린 채 달려와 안아주시는 분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립시다. 아멘.
■ 예배찬양
다 찬양하여라 (21)
https://youtu.be/SfK_QZAULq8?si=RCvW1mkrk5H101qt
■■■ 📖 성경말씀 (개역개정)
[누가복음15장 11-24절]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특별찬양
[말씀찬양] 이제야 알게 된 나의 천국 (탕자의 고백)
■■■ 설교
부활절 셋째주일
이제야 알게 된 나의 천국 (탕자의 고백)
나의 수치를 대신 감당한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는 오늘도 달리고 계십니다/ 회복의 골든타임: 지금 일어서라
우리가 다시 '우리'가 되는 길/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천국의 식탁
먼저 달려가는 사랑이 공동체를 살립니다 / 나라는 벽을 허물고 우리라는 지체로
은혜를 저축하지 말고 흘려보내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연결된 거룩한 몸
이 땅에서 경험하는 작은 천국, 교회/ 관계의 깨어진 틈을 메우는 사랑
도입— 우리 곁에 있는'멀어진 사람들’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가족, 다퉈서 등을 돌린 친구, 어쩌다 멀어진 지체... 한때는 가까웠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어색해진 그 사람 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늘 이런 질문을 마주합니다.
'저 사람과 나는 정말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 관계는 이미 끝난 것 아닐까?'
오늘 말씀은 이 질문에 단호하고도 따뜻하게 답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들려주신 이야기, 바로'돌아온 아들'의 비유입니다. 이 짧은 이야기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 되는 비밀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장면1 — 아들은 왜 떠났는가?
(눅15:12)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 앞에 나타나 이렇게 요구합니다. '아버지, 유산을 지금 당장 주세요.'
이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말인지1세기 문화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중동 사회에서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버지, 빨리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자식이 부모 면전에서 '당신은 필요 없어. 나는 내 길 가겠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침묵 속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참으며 재산을 나눠 줍니다.
아들은 재산을 챙겨'먼 나라'로 떠납니다. 여기서 '먼 나라'는 단순히 지리적인 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거리, 공동체와의 단절, 자기 자신에게서도 멀어지는 그 상태를 뜻합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당신의 삶에서 그'먼 나라'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에게서, 교회에서, 소중한 사람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부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장면2 — 돼지우리에서 정신을 차리다
(눅15:17-18)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결과는 뻔했습니다. 방탕하게 다 써버리고 나니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땅에 흉년까지 찾아왔습니다. 유대인이 가장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를 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먹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바닥에서 성경은 아름다운 글자를 씁니다.
"스스로 돌이켜" (눅15:17) — 그가 제정신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가장 바닥에 떨어질 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을 만납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도 양식이 넘치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그는 일어섭니다. 아들 자격이 아니라 종으로라도 받아 달라는 각오를 품고 아버지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언제 돌아옵니까? 완벽히 회복되고 나서가 아닙니다. 냄새나고, 남루하고, 여전히 부끄러운 그 모습 그대로, '그냥 일어서는 것'에서 모든 회복이 시작됩니다.
장면3 — 아버지는 왜 달려갔는가? (핵심 장면)
(눅15:20)"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자,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이 한 문장이 오늘 설교의 심장부입니다.
1세기 중동 문화에서 나이 든 족장, 집안의 어른이 달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긴 옷을 입었던 어른이 달리려면 옷자락을 걷어 올려야 했고, 그것은 맨살을 드러내는 심각한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달렸을까요? 단순히 반가워서가 아닙니다.
성경학자 케네스 베일리(Kenneth Bailey)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대에는 '게자자(Kezazah)'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자녀가 이방 땅에서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오면, 마을 사람들이 그 앞에서 항아리를 박살 내며'너는 이 공동체에서 끊어졌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발견하기 전에, 먼저 달려가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수치를 덮어쓰는 것으로 아들의 수치를 막았습니다.
수치를 뒤집어쓰고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는 아버지의 공개적인 행동은 마을 전체를 향한 무언의 선언이었습니다.
"이 아들의 잘못은 내가 다 감당한다. 나를 봐서라도 이 아이를 우리 공동체로 다시 받아들여라."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 주고, 신발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온 동네 잔치를 엽니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적 용서를 넘어, 공동체 앞에서 아들 됨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는 선언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아버지가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거리가 멀었을 때, 냄새나고 엉망인 그 모습 그대로 달려오십니다. 우리의 수치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보내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 되는 길
첫째, 지금 어디에 있든 일어나 돌아오십시오.
여러분 중에 혹시 지금'돼지우리'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관계가 깨진 자리, 죄책감으로 무너진 자리, 하나님과 멀어진 자리... 그 자리에서 그냥 일어나시면 됩니다.
완벽하게 회복되고 나서 올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 저 왔어요' 그 한마디면 됩니다. 아버지는 이미 달리고 계십니다.
둘째, 한 몸인 우리가 서로를 향해 달려가십시오.
비유 속 아버지처럼 우리도 주변의 멀어진 사람에게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수치를 감수하고 달려가는 그 사랑이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고린도전서12장은 말씀합니다.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우리는 독립된 섬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연결된 한 몸입니다. 이기심은 그 연결을 끊습니다. 그러나 수치를 감수하는 사랑은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습니다.
셋째, 은혜를 흘려보내십시오.
이 잔치는 혼자 먹는 밥상이 아닙니다. 온 동네 사람이 함께 먹는 잔치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는 혼자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누군가 기쁠 때 내 일처럼 기뻐하고, 누군가 힘들 때 내 일처럼 울어줄 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그 공동체가 바로 이 땅의 천국입니다.
결론— 아버지는 오늘도 달리고 계십니다.
탕자가 멀리서 보일 때 아버지는 이미 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달려오십니다. 우리가 멀어진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함께 달리십니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마음의 벽이 오늘 허물어지기를 바랍니다. 대신 이 고백이 가슴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 되게 하소서.“
이 한 문장이 내 기도가 될 때, 하늘 문이 열립니다. 아버지의 잔치가 우리 삶에서, 우리 교회에서, 우리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위해 기쁨을 참지 못하고 달려간 그 아버지의 사랑이, 오늘 여러분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결단 기도
하나님,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길 잃은 영혼을 향해 맨발로 달려오시는 당신의 뜨거운 마음을 찬양합니다.
티끌 같은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오늘도 우리를 하나님 집의 잔칫상 앞에 불러주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의 지난 삶을 고요히 돌아봅니다.
때로는 아버지를 곁에 두고도 마음은 '먼 나라'에 있었고
내 몫의 유산만을 챙기려 욕심냈던 탕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이기심으로 쌓아 올린 벽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우리의 완악함을 이 시간 회개합니다.
메마른 돼지우리 같은 절망의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소망의 새 옷을 입혀주옵소서.
하나님, 수치를 무릅쓰고 달려와 목을 안으시는
그 아버지의 사랑이 오늘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아들의 허물을 가리려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당하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이제야 깊이 깨닫습니다.
이제는 은혜를 저축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삶을 살겠습니다.
먼저 달려가는 사랑으로 깨어진 관계의 틈을 메우고
'나'라는 좁은 성벽을 허물어 '우리'라는 거룩한 몸을 이루는
참된 제자의 길을 걷기로 이 시간 굳게 결단합니다.
예수님, 이 시간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서로의 수치를 덮어주는 작은 천국이 되게 하시고
치열한 일터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청지기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잃어버린 영혼을 품는 따뜻한 집이 되어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기쁨의 식탁이 끊이지 않게 하옵소서.
특별히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신음하는 지체들을 어루만져 주시고
낙심하여 엎드린 이들에게 일어날 힘을 주시어
치유와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또한 이곳 예수참영성원을 위하여 간절히 간구합니다.
이곳이 영적 목마름을 해결하는 맑은 샘터가 되게 하시고
많은 이들이 주님과 깊이 대면하며
참된 영성을 회복하는 거룩한 처소가 되게 하옵소서.
이곳을 통해 하늘의 지혜가 선포되고
수많은 탕자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구원의 통로로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 봉헌찬양/ 햇살처럼 달려오신 품/ 탕자의 형과 누나의 고백
■ 봉헌기도
우리의 소중한 마음을 담아 봉헌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의 봉헌자 (**아. 은**, *** / 2026년 4월 25일까지)
[봉헌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생명의 호흡을 허락하시고
부활의 기쁨 속에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물을 드립니다.
정성으로 드려진 감사헌금과 영성원의 사역을 위해 보내주신 귀한 후원금,
그리고 사랑의 마음이 깃든 후원 물품들을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이 예물이 쓰이는 곳마다 무너진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려 섬기는 봉사자들과
영성원을 위해 밤낮으로 눈물 흘려 기도하시는 중보자들의 삶을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의 가정과 일터 위에 하늘의 신령한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유튜브 채널과 홈페이지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말씀을 대하는 모든 온라인 지체들을 축복합니다.
화면 너머에서도 동일한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하시고,
전해지는 말씀을 통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수치에서 건져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결단찬양(273)/ 나 주를 멀리 떠났다
https://youtu.be/DOeyLwgson0?si=TRwfN70hTmh5jK9T
■■■ [축도]
지금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수치를 대신 감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와,
탕자와 같이 멀리 떠난 우리를 끝까지 기다리시고
수치를 무릅쓰며 달려와 목을 안아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하심과,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깨어진 틈을 메워 한 몸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내주 교통하심이,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이제는 '나'라는 벽을 허물어 '우리'라는 지체로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사랑하는 성도들 머리 위에와,
이 땅의 작은 천국을 일구어가는 예수참영성원의 모든 사역 위에,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마음을 합하는 모든 믿음의 가족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송영]
주 너를 지키시고 (638장)
https://youtu.be/MYj3XF2Qfik?si=Sh10saa0txMuFd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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