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말씀으로 행복하고 온전해지는 예수참영성원
https://youtu.be/Tp_ErxMsUww?si=US4nl_pkpY3J-VJP
그 사건은 당초에 형사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성과를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약이 오른 형사들의 고문은 더 혹독해졌습니다. 그들은 주 목사의 손톱을 잡아 뽑았습니다. 그리고 손톱 뿌리가 남아 있는 자리를 대나무 바늘로 쑤시고 찔렀습니다.
“주여 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들을 용서하소서.”
기절한 주 목사의 얼굴에 물을 끼엊고 의식이 깨어난 주 목사를 널판자에 눕혀놓고 사지를 묶었습니다. 그리고 아랫도리를 벗긴 뒤에 알코올에 적신 탈찌면을 감은 꼬챙이를 요도에 쑤셔 넣었습니다. 찢겨서 피가 흐르고 면도날로 아랫배를 저며내는 듯했습니다.
“주님 이것을 겪게 하시려고 내 목구멍에 밥을 넣어주셨나이까? 이것을 겪게 하시려고 나의 숨을 이어주셨나이까? 오! 주님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위에 주님! 나를 받으소서. 나를 그 품에 감추어 주소서.”
얼마나 고문이 심했던지 의성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던 전도사 목사들이 고문 끝에 맑은 정신을 잃고 실성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한편 평안장로회는 ‘신사 참배는 교리에 배타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9월 2일에 경안노회도 정기노회에서 신사 참배를 가결했습니다. 9월 9일 총회가 열리기 전 총 노회 27개 중 과반수가 넘는 17개 노회가 신사 참배를 스스로 가결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장로회 27차 총회가 9월 9일 평양의 서문밖 예배당에 219명의 총회 참석자가 모여들었습니다. 참석자 219명 사이 사이에 경찰관 97명이 끼어 앉아 장로회 총회가 아니라 경찰관 모임 같았습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임원 선거를 하고 허둥지둥 신사 참배의 가결 절차로 쳐들어가듯 들어갔는데, “조선의 교회는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을 것이오, 신사 참배를 반대하오.” 하고 반대를 외친 사람은 조선 사람이 아닌 미국 선교사였습니다. 사복 경찰 몇 사람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를 끌고 나갔습니다. 총회장이 가결 선포를 하자 30여 명의 선교사들이 우르르 일어나 이것은 불법이라고 항의하였습니다. 형사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나가던 선교사 한 사람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끝내 통곡을 터뜨렸습니다. 방청석에도 흐느낌이 번져갔습니다.
의성에서 주 목사의 면회를 허락한다는 전갈이 오자 오사모는 먹는 것도 있고 자는 것도 잊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형사들은 오사모를 앉혀놓고 회유하였습니다. “주 목사는 시국에 대해 아주 둔하더군요. 그러니 부인께서 면회를 하시면서 요즘에 돌아가는 사태를 잘 설명하시고 신사 참배하겠다는 약속을 하도록 설득하세요. 아시겠습니까? 그것 한 가지면 당장 석방입니다.” 형사실 문이 열렸습니다. 주 목사의 모습은 너무도 처절했습니다. 깎지 못한 수염 속의 얼굴은 백낮빛이었습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저고리는 헐렁하여 허수아비에게 걸쳐놓은 옷처럼 보였습니다.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검불처럼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사모를 발견한 순간 생기를 얻고 웃었습니다. 반가움과 희망, 지옥과 같은 형편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었습니다. 오사모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했습니다.
“목사님 장하십니다. 조선의 교회가 다 무너져도 목사님이 견디시는 한 우리 주님의 교회는 그 자리에 건재합니다. 목사님 승리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목사님의 승리를 끝까지 지켜보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갑자기 배 형사가 머리채를 잡아챘습니다. “아니 이런 독한 계집이 있나 제 서방을 석방시키도록 말을 거들랬더니 더 견디고 승리하라고 세상에 서방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독한 여편내로구만!” 머리채를 잡아뜯기면서도 오사모는 “목사님 우리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목사님 지금까지 견디신 것처럼 기도하시면서 견디십시오. 모두들 잘 계시니 집안 염려는 하지 마세요. 산정현 교회도 꿋꿋하게 잘 견디고 있습니다. 교인 중에 아무도 10계명을 어긴 사람이 없습니다.”
배영사는 오사모를 내동댕이 쳤습니다. 나뒹굴러지면서 “목사님 음식을 잡수시고 힘을 키우셔야 합니다. 잘 잡수시고 밤에는 잠을 주무세요. 목사님!” 그러나 평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오사모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주님 용서하세요. 기차 안에서만 울고 평양에 도착하면 눈물을 흘리지 않겠으니 지금만 용서하세요.”
주 목사를 설득하기 위해 형사들은 고향 웅천에서 형님들을 끌어와 인정으로 유혹해 보았으나 주 목사는 오히려 형님들에게 신앙의 권고를 해주니 형사들은 분을 품고 이를 갈았습니다. 그들의 계획대로 되지 못하고 결국 다음해 2월 농우회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들은 검찰청으로 넘겨졌고, 검찰에서는 유재기 목사 한 사람만 기소를 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로 석방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2월 5일 주일 아침 평양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기철 목사를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주 목사를 발견한 순간 찬송가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내주는 강한성이오.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고, 주기철 목사의 일행들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 목사는 집으로 가기 전에 예배당으로 먼저 향했습니다. 그리고 강대상 앞에 꿇어앉았습니다. 모두들 뒤편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렸지만 목사님의 흐느낌을 그 가슴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자 평양과 대동과 선교리에 세 개 경찰서 소속 고등계 형사들이 산정현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주 목사가 강단에 올라섰습니다. 실로 7개월 만에 돌아온 자리였습니다.
2천여 명이 집결한 자리였으나 숨소리 한 가닥 들리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봉독하는 목사의 음성은 청정하기 그지없었고, 사랑에 대한 확신이 용솟음치는 낭랑한 목소리였습니다.
“지난 7개월 동안 감옥에서도 나와 함께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기도해 주신 여러분의 기도 안에서 저는 모든 것을 잘 견디고 오늘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7개월 동안 저에게는 5종목의 기도가 세워졌습니다.
첫 번째, 저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사망의 권세는 사람을 위협하는 마귀의 최대 무기인 듯합니다.
죽음이 두려워 의를 버리고 죽음을 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주님을 버리고 100년 천년 산다 한들 그것이 무슨 떳떳한 삶이 되겠습니까? 오! 주님 이 목숨 아끼다가 주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겪지 않게 해주옵소서. 이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도 주님의 사랑만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두 번째의 기원은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입니다. 단번에 겪는 고난은 이겨내기 쉬우나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가 힘이 듭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고문이라도 한두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가 있으나 한 달, 두 달, 1년, 10년 계속되는 고난은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하물며 저처럼 연약한 약졸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어 백이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할 뿐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주어지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내가 무슨 말로 대답하랴.
세 번째는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하는 기도입니다. 나에게는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와 아직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아들로 태어나 자식의 의무도 중요하고,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자식들의 아비가 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늙으신 어머님을, 병든 아내를, 어린 자식들을 불안해하는 양떼를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인간을 얽어맨 인정의 줄이 나를 얽어매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부모나 처자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께 합당치 않다 하셨으니 저로 예수님께 합당한 자가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네 번째로는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십시오.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의 의가 있습니다. 이 몸이 어려서 예수님 안에서 자랐고, 예수님께 헌신하기로 10번 100번 맹세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목사가 되어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된 오늘, 이 몸이 어찌 죽음을 피하려 하겠습니까? 인생은 짧고 의는 영원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의에 죽고 의에 삽시다. 부디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삽시다.
다섯 번째,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혹여 옥중이나 사형장에서 저의 목숨이 끊어질 때 저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는 저의 고향이로소이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저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황금길을 걷게 하옵시고 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저를 깨끗히 하사 영광의 조건에 서게 하시옵소서. 저의 영혼을 주님께 의탁하나이다.
“아멘!” 눈물 바다를 이룬 산정현 예배당에서 그날 그 자리에서만은 모든 사람이 하나였습니다. 일본의 앞잡이로 손가락질 받던 조선 형사들까지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집으로 돌아온 뒤 6개월 후의 일입니다. 8월 초순 어느 주일 예배 시간이 임박하여 여러 명의 형사대가 찾아와 당장 설교를 중지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설교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며 예배 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강단에 서서 설교하였습니다.
그날의 설교가 있은 지 나흘째 6명의 형사들이 사택으로 들이닥쳤습니다. 형사들이 웅성거리며 들어서는 것을 본 순간 목사님의 얼굴은 백납처럼 창백해졌습니다. 매 순간 각오를 하지만 막상 그들이 나타났을 때 한순간의 공포가 그의 육체와 정신을 덮쳤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사오니 저를 지켜주옵소서. 저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저보다도 주께서 더 잘 아시오니 제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옵고, 주께서 감당하시는 것임을 한시도 잊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제가 당하는 고문으로 조선의 2천만 백성이 신앙을 지킬 수만 있다면, 이 고문으로 저를 재물 삼아주소서, 이 백성이 이 매를 맞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만 있다면 이 매를 저 혼자서 맞게 해 주시옵소서.”
고무신을 신는 주 목사를 형사들 서너 명이 달려들어 잡아 끌었습니다. 주 목사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혈육의 정은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외로운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주 목사를 연행하자마자 지하실에 끌어다 놓은 시미즈가 형사는 고통을 더 주기 위해 고문의 순서까지 자신이 정했습니다. 그날은 주목살을 먼저 거꾸로 메어 달았습니다. 그리고 주전자에 고춧가루를 풀었습니다. 피가 머리로 내리 쏟아지고 눈알이 당장 빠질 듯 했습니다. 코로 입으로 들이붓는 고춧가루 물은 뇌수를 긁어 흔들며 단번에 숨통을 막았습니다. 목구멍이 찢어지고 코 속이 타는 듯 했습니다. 그들은 주 목사를 천장에서 끌어내려 엎어놓고 등을 발로 밟고 옆구리에 발길질을 했습니다. 코로 입으로 들어갔던 고춧가루 물이 다시 조금씩 밀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주 목사를 의자에 묶어놓고 전기 고문을 했습니다.
그때 홀연히 주 목사의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 쓰면 큰 권능 얻겠네./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 죄 눈같이 히겠네./ 내 마음이 약하여 늘 넘어지오니 주 예수 힘주사 굳세게 하소서./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형사들은 얼굴을 흉축하게 찌푸렸습니다. 예수한테 힘을 달라고 노래를 한다.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고문을 받으면서 노래를 부른다고 그러면 비행기를 타고 고춧가루 물을 마시면서도 노래를 부르는지 한번 다시 지켜봐. 주 목사는 다시 천장에 거꾸로 매어 달렸습니다. 그리고 코와 입으로 쏟아붓는 고춧가루 물을 들이켰습니다.
“주여! 나를 주님 곁으로 부르소서. 나의 육체가 슬프오니 내 슬픔을 거두어 주소서.”
산정현 교회 교인들은 목자 잃은 양떼였습니다. 주일마다 선교사가 설교를 하지만 주 목사가 지금 이 시간에도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는 교우들은 하나처럼 기운이 없었습니다. 며칠 후 평양 경찰서에서 산정현교회로 긴급 호출령이 떨어졌습니다. 경찰서로 간 교회 중진들에게 경찰서는 지시 사항을 주면서 협박을 했습니다.
1. 교회 재직은 모두 매주일 반드시 한 번씩 신사 참배를 이행할 것. 2. 설교 또는 교회 사무는 재직들이 집행하고 서양인과 기타 다른 사람은 교회 일에 관여하지 못한다. 3. 이 사항들에 관한 결정을 금일 오후 3시까지 회답할 것. 4 이상 세 가지 항목 중에 단 한 가지라도 불응할 때에는 당장 내일부터 교회를 폐쇄한다.
이제는 주기철 목사와의 싸움이 아니라 산정현 교회와의 싸움이 구체적으로 시작된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주일 예배는 눈물의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감시하던 형사들이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도들 개중에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아가며 타협을 제의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모두 경찰서에 갇히는 것이 낫지, 순교라면 몰라도 누가 배교에 앞장서라는 말이오, 산정현 교회가 지금까지 지켜온 정절이 아까워서라도 그렇게는 안 될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청년 회원들은 “옳소, 만일 당회나 재직회가 신사 참배를 하기로 결정을 하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하며 혹여라도 재직들이 신사 참배를 하기로 결정할까 봐 눈을 부릅뜨고 있었습니다. 신사 참배가 결정되지 않자 수요 예배 설교를 하러 강단에 올라가던 방장로를 갑자기 형사 서너 명이 덮쳤습니다. 방장로가 끌려간 곳은 주기철 목사가 고문을 당하고 있던 지하실이었습니다. 형사들은 주 목사를 메어 달아 놓은 채 그 앞에서 방장로를 형틀에 묶어놓고 미친 듯이 두드려 패기 시작했습니다. 방장로는 일어나 걷지 못하는 주 목사를 끌어 등에 업고 간방을 향해 걸었습니다. 이것이 이유가 되어 기운이 남아 저렇다며 방장로를 또 끌어다가 고문을 시켰습니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감방에 돌아왔습니다. 장로님, 우리의 정신은 생생합니다. 더구나 주님의 장중에 붙잡혀 있는 우리의 영혼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지요. 일본 관원이 무슨 짓을 한다 해도 우리의 영혼만은 흠집 없이 지켜주십니다. 주 목사는 기도하는 방장로에 등 뒤에 대고 나직이 그동안 고문을 당하면서 한 줄 한 줄 기도하듯 지은 영문 밖의 길이라는 시를 그 무렵 널리 알려진 단유부강의 잔물결이라는 곡조에 붙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영문 밖에 빛이누나. 연약하온 두 어깨에 십자가를 걸어지고/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 옷 한없이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경찰은 산정현 교회에 압력을 가하여 신사 참배를 시키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으나 교회는 똘똘 뭉쳐 신사 참배를 거부했습니다. 경찰의 명령에 따라 임시 노회로 총회의 신사 참배 결의와 총회장의 경고문을 무시한 주기철 목사를 파면시켰습니다. 부활주일에 평양노회 전권 위원들 9명이 강단을 차지하고 이인식 목사를 당회장으로 세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교인들은 부활주일 전날 밤부터 예배당에 모여 눈물로 기도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주일 예배 시간이 다가오자 양재현 집사가 204장 ‘내주는 강한 성이요와 십자가 군병들아’를 이어서 부르며 절대로 중단하지 말자고 외쳤습니다. 교인들 모두는 예배당을 뒤흔들고 하늘을 흔들 만큼 우렁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9명의 수습위원, 목사님들과 경찰 40여 명이 밀어닥쳐 중지를 시키려 악을 써댔으나 곧 찬송 소리에 묻혀버렸습니다. 화가 난 형사들이 교인들을 잡아 끌어내고 내동댕이치며 감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피가 흐르고 옷이 찢겼으나 찬송 소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경찰은 예배당을 폐쇄시켰습니다. 경찰은 이제 주기철 목사의 가족들이 기거하고 있는 사택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헛간 같은 비참한 단칸방으로 이사시켰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고생하는 주 목사를 생각하며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주 목사를 취조했던 경사는 목사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주기철 목사가 국법만 아니었다면 나는 정말 주 목사를 존경할 뻔했소.’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주 목사를 화제로 올리며 그의 신앙을 칭찬하며 주 목사의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평양 경찰은 일단 주기철 목사를 가석방이라는 명목으로 방면할 방침을 세웠습니다. 가석방의 소식을 들은 산정현교회 교우들은 서로 얼싸안고 울며 웃으며 기뻐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를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주 목사는 잠깐 멈칫했습니다. 그 환상 속에서 그는 다시 이어질 끔찍한 고문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미소를 떠올리며 손톱이 다 빠져 아직 아물지 않은 손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경배하듯 잡았습니다. 그리고 산정현교회 먼지 앉은 강단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주님! 주님이 견디셨습니다. 주께서 이기셨습니다. 나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만나처럼 내려주시며 주께서 이 길을 가십니다. 그러나 주님 감히 질문을 해도 된다 하시면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 제가 겪어야 할 일은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주님 이 흩어진 양떼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의 전신은 애절한 눈물이 되어 녹아 흘렀습니다. 주 목사는 십자가로 못질된 산정현 교회에 바쳐진 재물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좁은 길을 가면서 찢어지고 찢어진 그의 영혼과 육체, 남들은 그를 이미 위인이라고 불러주지만 그는 철저하게 홀로 그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을 하던 목사들과 장로들이 모여 비분 관계로 자리가 뜨거워졌습니다. 신사 참배한 목사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징계하고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이들이 모여 새 노회를 만들어 교회 재건 운동을 시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침묵만 지키는 주 목사의 의견을 묻자 “여러분의 말씀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인간의 나약함을 슬퍼하십시다. 심판은 하나님 한 분이 하시도록 맡겨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뒤에서 기도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도를 등진 자들을 치리하는 것보다 차라리 교회에 충성하는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6월 중순 오후 형사떼가 몰려와서 위협하며 나오라고 소리치자 주 목사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앉아 있던 자리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주기철은 쓰러진 어머니 앞에 꿇어앉아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불효한 자식의 봉양보다 자비하신 주님의 보호하심을 의지하오니 어머님을 지켜주시옵소서. 이 몸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겠나이다.” 소식을 들은 장로들과 교우들이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주 목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를 선창하였습니다. 모두들 목매인 소리로 눈물을 쏟아가며 찬송을 함께 불렀습니다.
다음해 초봄 느닷없이 형사가 들이닥쳤습니다. 특별 면회라고 하면서 식구들 모두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특별 면회라는 말에 노모는 솔깃하고 광조는 그저 좋아하며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3층 형사실이 아닌 지하 고문실로 데려갔습니다. 시멘트 방에 세 식구를 밀어넣고 유리벽으로 되어 있는 맞은편 간방에는 갖가지 고문 도구가 있었는데 그 방으로 주 목사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형사들은 가족들이 보이는 앞에서 주 목사를 잔인하게 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모는 기절하여 시멘트 바닥에 쓰러졌고, 오사모는 어머니를 무릎에 안고 엎드려 숨차게 주님만을 찾았습니다. 주 목사가 기절하니 천장에서 끌어내려 이제는 고춧가루를 주전자에 풀어 그 물을 목사의 코와 입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형사는 주 목사 고문 받는 것을 지켜보지 않는다고 노모와 오사모를 발길로 걷어차고 머리끄덩이를 끌어 내동댕이 쳐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 목사의 배가 출산 직전에 임산부처럼 부풀어 오를 때까지 붓더니 이제는 목사의 배에 의자 둘을 엎어놓고 배를 짓눌렀습니다. 그러자 뒤로 쳐져 있던 입에서 코에서 귀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핏물 같기도 진물 같기도 한 검누런 빛의 물이었습니다. 노모는 다시 혼절하여 늘어졌고, 오사모는 더 이상 볼 수 없어 눈을 감았습니다.
“주님 목사님을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님 십자가를 붙들고 일어나십시오.”
형사들은 야비한 웃음을 떠올리며 목사를 일으켜 책상 위에 앉혔습니다. 주 목사와 오사모의 눈이 마주치자 깊은 신뢰와 아픔과 사랑으로 미소 지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형사들은 검도용 칼로 오사모를 후려치며 발길질을 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습니다. 살이 터지면서 흐른 피가 시멘트 바닥을 적셨습니다. 밤이 깊어서야 세 식구는 경찰서에서 풀려났습니다. 노모는 정신을 잃었고, 어린 광조는 아버지가 당하는 고문과 어머니의 매맞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 충격으로 말을 잃었습니다.
“광조야! 내 아버님은 지금 수치를 당하고 계신 것이 아니란다. 하나님이 주실 크나 큰 상을 받게 되신다. 내 이름을 광조라고 지어주신 아버님의 뜻을 저버리지 말아야지, 조선의 빛이 되라 하신 뜻, 조선을 밝게 비추라는 뜻을 잊지 말아라.” 오사모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들 광조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1942년 겨울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를 당하고 눈에 띄게 당황해하면서 징병제를 실시하여 조선의 젊은이들을 마구잡이로 끌어갔습니다. 평양 경찰서에서 주기철 목사 일행과 함께 수감되었던 안희숙 자매는 풀려나오는 길로 주 목사 가족에게 달려왔습니다. 감옥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주님의 신비스러운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전쟁 전에는 가축 사료나 퇴비로 쓰던 콩깻묵으로 지은 밥을 먹고 간방에서 시체 썩는 냄새로 가득 찰 정도로 수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그 끔찍한 사건 속에서 크리스천들만은 무사했습니다. 그리고 주 목사는 안 자매가 있는 간방 건너편에서 손으로 글씨를 써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셨다 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공중에 쓰기를 "우리는 그저 한 발자국씩만 걸읍시다. 뛰려고도, 날려고도 말고 그날 닥쳐오는 일을 한 발자국씩만 다지면서 가면 갈 수 있겠지요. 죽는 것이 목표이면 그 죽음이 언제 오든지 언제나 죽음의 선만 목표로 하면 그 나머지 일은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장기간의 고난을 어떻게 견딜까 근심하면서 장기간의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해주십사 기도했는데, 고난의 기나긴 시간도 주님의 주권 안에 있으니 그것은 우리들의 시간이 아닙니다. 그저 그날 나에게 오는 고문의 불량을 한 걸음씩 받아들이는 것뿐 주님이 그 걸음을 함께 하시니 우리는 그냥 따라가는 것이지요.”
“다음에 닥쳐올 고통을 근심하거나 무서워할 일도 없고, 어제 당한 고난에 따지고 셈할 일도 없이 오늘 그저 지금 내게 닥치는 것을 묵묵하게 받아들이다 보면 결말이 올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흔쾌하게 기쁘게 감사하게 받을 수 있는 훈련을 주님은 이렇게 시키고 계신 거예요. 이 안이 신비스럽습니까?”
1944년 전쟁은 막바지에 달한 것 같았습니다. 그간의 목회자나 장로, 집사, 평신도들을 구속수감한 숫자가 2천여에 이르렀습니다. 징병제는 학병제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학교 건물뿐 아니라 교회 건물까지 일본 군대를 주둔시켰고, 교회 안에까지 가미다나를 설치했습니다. 2월 주 목사와의 면회는 꺼져가는 등불의 심지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 같았습니다. 이미 그의 육신은 허물어지고 있었지만 여전한 미소로 면회한 후 뜻밖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보! 광조가 보고 싶구려. 이제 곧 소학교 졸업이겠구려. 다음 3월 면회 때 광조는 잔뜩 긴장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아침 9시에 집을 떠나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이름이 호명되었습니다. 철장 앞에 푸른 죄수복을 입은 아버지는 머리를 빡빡 깎은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주 목사는 눈물이 글썽해진 눈으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간수에게 부탁하여 종이와 연필을 구하여 집으로 유서를 썼습니다. 뭉그러진 손으로 힘들게 쓴 흐트러진 글씨 속에는 어머님과 자식에 대한 애끓는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유서를 받은 지 며칠 후 어머니의 꿈에 아들이 꿇어 엎드려 큰절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며칠 뒤 저녁 형무소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주 목사가 위독하니 면회를 오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날이 밝기도 전에 형무소로 달려갔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서 있을 힘도 잃은 듯 간수들에게 몸을 의탁한 채 허공을 더듬다가 오사모를 알아본 듯 했습니다. “목사님 승리하셔야 합니다. 이제 다 오셨습니다. 끝까지 승리하셔야 합니다.”
주 목사는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머지않아 주님 앞으로 갈 것이오. 아! 어머님이 보고 싶소. 불쌍한 어머님을 내 대신 잘 모셔주시오. 어린 자식들을 잘 부탁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가서 조선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겠소. 교회에게 내 말을 전해주시오. 나를 웅천으로 가져가지 말고 평양 돌박산에 묻어주시오. 내 어머님도 세상 떠나시거든 내 곁에 묻어주시오.” 그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주 목사는 쓰러졌고, 간수들은 황급하게 주 목사의 몸을 양편에서 붙들었습니다. 끌려가며 주기철은 뒤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여보!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마시고 싶소.” 오사무는 눈물로 바닥을 적시면서 밤을 새우고, 날이 밝을 무렵 이제는 이 땅에서 주기철 목사의 고통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기철 목사에게 입힐 새 옷을 챙겨 들고 곧장 형무소로 달려갔습니다. 일본이 무너지기 1년 4개월 전이었습니다.
사모님 어제 목사님께서 운명하시던 순간 “내 영혼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하며 마지막 외치시던 음성이 어찌나 우렁찼던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무척 놀랐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승리하셨습니다. 한 간수가 말해주었습니다.
장례일인 화요일 아침에는 눈부시도록 화창한 햇살이 쏟아졌습니다. 평양고등보통학교 정문 앞 광장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경찰관들이 몰려들었으나 수많은 사람들 기세에 눌렸는지 아무런 행동 개시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성산 공동묘지 주 목사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돌박산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한 효자, 아이들의 훌륭한 아버지, 애정을 가진 남편, 연약한 육신을 입은 인간 주기철. 그러나 인간의 애절함과 연약함을 지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십자가만 바라보며 묵묵히 한 걸음씩 주님을 따라간 하나님의 종,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명령에 겸손히 순종한 충성스러운 종이었습니다.
“너마저 날 버리겠느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10장 32~33)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사야 5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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