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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어거스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글. 동영상)

  • 이은아 목사
  • 2021-12-02 1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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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어거스틴은 아직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는 멋진 삶을 산 분이지요
율법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울이 기독교의 창시자라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로마제국의 말기에서 중세로 전환되는 혼란기에 중세의 천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철학과 기독교 신학사상을 제공한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국교로 채택되며 순식간에 늘어난 개종자들에게 아직 정립되지 않은 기독교의 주요 교리를 놓고 논란이 많은 시대적 상황에서 초기기독교의 기본적 교리 문제들을 정리하고 신학을 정립했다.
또한 그는 지혜와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방랑하는 구도자였다. 그는 맹목적인 신앙을 거부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을 수 없으며 그것을 믿는 행위는 권위의 복종이라고 부르짖었다.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진정한 앎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다.
Ⅰ. 생애
354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날 알제리에 있는 타가스테(Tagast)에서 이교도 아버지와 경건한 어머니 모니카에게 태어났다. 도시의 하급 관리였고 매우 엄격하고 교육적 열정을 갖고 있던 아버지는 다소 동정심이 없었으며 공명심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의 학비를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도 친구의 죽음은 깊이 애도하고 그로 인해 추억의 땅인 고향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엔 그다지 많은 언급을 하지 않음을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어머니역시 그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그는 고백록에서 “어머니의 귀염둥이”로 자신을 묘사하는데 어머니와의 관계는 그가 교회와 맺고 있는 상태를 투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오랜 동거녀와 헤어지도록 압력을 넣고 본인이 선택한 귀족가문의 여성과 결혼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가 어머니 몰래 도망간 밀라노까지 어렵고 힘들게 추적해서 아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는 카르타고에 수사학을 공부하러 갔는데 카르타고는 17세에 북아프리카에서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지고 가장 큰 도시였다. 카르타고에서 공부를 잘하여 수석을 잘하였지만 가슴에서 타오르는 정열을 참을 수 없어서 어떤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고 16세 때 벌써 아들을 낳았으며 성적 쾌락의 극치를 경험했다고 그의 저서‘고백록‘은 기록한다. 또한 이단 종파인 마니교에 심취되었는데 이는 선과악의 명확한 이해를 해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수사학의 교수가 되어 카르타고와 로마에서 다시 밀라노로 가서 가르쳤다. 이 3대 도시는 서로마의 3대 도시로 그는 젊은 시절 화려한 도시들에서 방황했다. 그가 성서를 믿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생각한 설득력은 아름답고 정결한 언어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는데 성서의 문체가 조잡하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사학은 당시의 정치가, 법률가, 교사, 수도사, 사제 등이 배우려 했던 학문이다. 성서에는 분노, 살인, 전쟁, 심판 심지어 멸절 등의 험한 이야기와 추한 단어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성서를 수사학적 관점에서 아주 실패한 책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이다. 그 대신 진리를 설파한다는 마니교(Manichaeism)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유는 그가 고민하던 악의 문제를 마니교가 기독교보다 더 합리적으로 대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니교가 된 아우구스티누스는 공부를 마치고 21살의 나이에 동거인과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 모니카는 분노와 슬픔을 견디지 못해서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지 못했다. 친한 친구의 죽음 이후에 고향을 등지고 다시 카르타고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마니교를 열심히 신봉하던 중 마니교 감독 파우스트를 만났지만 오히려 마니교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7년의 수사학 교수 생활을 하다 어머니를 속이고 29세 때에 더 좋은 보수와 성공기회를 얻고자 로마로 생활 터를 바꾼다. 그러면서 밀라노시의 수사학 교수채용에 응시하고 합격함으로 밀라노의 수사학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 곳에서 운명은 그를 당시 수사학의 대가 암브로시우스를 만나도록 하는데 그는 테오도시우스대제가 존경하는 주교였다.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암브로시우스는 “알기위해서는 먼저 믿어야 한다.”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통해 성서자체의 거친 표현들 이면에 깊은 내적교훈들이 깔려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 때 어머니 모니카는 바다와 육지를 넘어 밀라노에 와서 자기 아들이 기독교 신앙에 점점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고 기뻐했다. 암브로시우스가 수사학적으로 성경을 어떻게 풀이하는가는 그에게 성경을 새롭게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밀라노에서 신 플라톤 주의자들을 접하게 되었고 이 책들을 통하여 악의 근원에 대한 마니교의 이원론을 극복하였으며 기독교 신앙의 합리적 근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바울 서신을 탐독했을 때 이때가지 이해할 수 없었던 성서의 많은 문제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후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바치고 싶은 그에게 ’돈과 명예와 정욕‘을 버릴 수 없었음을 발견하고 고민하던 그에게 회심사건이 생겨났고, 세례 후 고향으로 돌아가 수도생활을 결심하고 아프리카로 떠나는 배를 기다리던 중 어머니가 56세에 세상을 떠난다. 고향에서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3년간 수도원생활을 시작한다.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으로 더 큰 도시로 떠난 아우구스티누스는 37세에 힙포(Hippo)의 감독을 뽑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사제로 추대되었고 395년 44세에 힙포(Hippo)의 감독으로 추대되었고 이후 33년 동안이나 힙포의 감독으로 사역하였다. 그곳의 유일한 감독이 되어 북아프리카를 돌보며 신앙과 교리를 수호하고 여러 종교회의를 주도했다. 그곳에서 7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힙포(Hippo)뿐 아니라 천년이 넘는 중세를 자신의 지성과 영성으로 섬기게 되었다.
Ⅱ. 회심
기독교 신앙을 이론적으로 이해했다고 해서 육의 것을 탐닉하는 돈과 명예와 정욕에 빠져있는 자신의 영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신앙의 진리에 몸과 마음을 바치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돈과 명예와 정욕’을 버릴 수 없어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386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인생의 의미로 고뇌하는 도중에 자신의 집 정원 무화과나무 밑에 주저앉아 기도한다.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나의 이전 죄를 기억하지 마시고 진노하지 마소서. 나의 이 불결함이 내일 끝나야합니까? 오늘은 안 됩니까?” 어린아이들의 노래 같은 신비한 음성을 듣게 된다. “집어 읽으라! ” 그는 즉시 성경을 들고 눈에 크게 들어오는 부분을 읽었다.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정욕과 육신의 일들을 추구하지 말라(롬13:13).” 순간 아우구스티누스는 빛을 발견한 감격을 느꼈고 신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듬해 부활절에 세례를 받는다. 통회의 눈물과 함께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무화과나무 밑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빗나간 아들을 위해 20여 년간 눈물로 기도한 어머니 모니카는 감격의 순간을 맞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어머니들에게 “눈물의 기도하는 어머니를 둔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라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회심 후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화려한 도시를 떠나 광야의 수도자의 삶을 살기로 선택하고 밀라노를 떠나 고향인 북아프리카로 간다. 고향으로 가는 배를 타기 전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 모니카는 열병으로 임종을 맞게 된다. 그녀는 “네가 어디에 있든지 강단에 설 때마다 나를 기억해 주기 바란다.”를 유언으로 남기고 자식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난다. 고향에 도착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수도원생활을 시작한다. 심지어 교회의 그릇까지 녹여 선행에 힘썼다. 그는 번민하는 영혼들에게 시련을 통해 진리의 빛에 들어가며 고통을 통해 하늘평안을 얻는 것을 가르쳤다. 그는 평생 야채만 먹으며 살았고 이런 그를 본받아 훗날 수도사 겸 사제로 사역하는 아우구스수도회가 시작되었다.
Ⅲ.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그는 일생동안 113권의 책과 250편의 서신을 썼다. 회심 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생을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세례 받을 준비과정 중에 쓴 초기저서로는 『회의론 반박』(Contra Academicos), 『행복한 삶』(De beata vita), 『질서론』(De ordine), 『독백론』(Soliloquia) 등이 있다.
대표적인 저작과 사상은 다음과 같다.
『고백록』
가장 유명한 저술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회심을 기록하였다. “고백”은 죄에 대한 고백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고백들을 뜻한다. 이 책은 서양 최초의 자서전적 문학으로서 지성사적 전환을 가져왔다. 참된 인간은 자신의 내적 여정에서 신의 은총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발ㄹ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추적하고 찾아오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경험들을 고백한다. 그는 당시 기독교가 화려한 건물, 복잡한 의식, 고급 옷, 성직제도 등으로 형식화 되는 것을 경계하며 은총의 빛과 만나는 진리 추구를 강조하였다.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감각적 쾌락보다 더 감미로우며 땅위의 어떤 빛보다 더 밝은 빛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하나님만이 인간을 만족시키는 목적이 되신다고 하였다. 하지만 인간이 선을 행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책을 쓰게 된 목적은 첫째, 자기 자신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향하게 하여 그를 사랑하고 찬양하게 하기 위함이다.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고 감사한 찬양 록이다. “내 고백록 13권은 나의 악한 행동과 선한 행동을 말함으로 공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을 자극하여 하나님께 향하게 하고 있다.” 둘째, 380년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 이후 기독교인이 자신의 선택으로 되어 지기보다 기독교인으로 태어나게 된 상황에서 그들을 돌보고 양육해야하는 감독으로서 ‘어떻게 하면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켜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할까?’를 가르치기 위해 썼다. 셋째, 교회의 박해시대에는 어떻게 순교할 것인가, 즉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가를 가르쳤다면 사회상황이 달라진 이제는 어떻게 기독교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야했다. 그것은 바로 무분별한 이성간의 사랑을 피하고 사랑의 질서를 지키라는 권면과(2,2,2), 관습에 의한 정의가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올바른 법에 의한 정의를 따르라(3,7,13), 뇌물이나 위협을 물리친 기독교인의 윤리의식(6,10,16)에 대한 것이다. 넷째, 교회에 들어온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을 신학적으로 설명해 줄 필요를 느꼈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 혼란의 경험을 통해 기독교의 전통신앙에서 지적인 실존적인 해답을 찾았다고 고백하며 여러 신학적 주제들, 창조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시간 론, 악의 기원, 구원의 은총 등을 다루고 있다. 다섯째, 인간의 마음 속 깊이 도사리고 있는 죄에 대한 것이다. 박해시기의 기독교의 적은 외부에 존재했으나 현재의 싸움의 대상은 인간의 안에 있는 저가 자신의 죄인 것이다(8,10,22). 여섯째, 396년 힙포의 감독으로 선별되자 그의 젊었을 때의 방탕했던 일과 마니교에 심취한 일들, 전통 가톨릭에서 분리되 나온 도나투스를 비판한 일들로 안팎의 비난과 오해를 잠재우기 위함이기도 하다.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한 교본』
사도신경은 믿음의 고백이고, 주기도문은 소망의 간구이고, 십계명은 사랑의 명령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저서에서 신앙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신의 도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년에 서로마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로마가 왜 무너져야하는지 신학적인 대답을 이 저서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를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인간의 도성”이며 “하나님의 도성”은 지상의 가시적 왕국이 아님을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상왕국이 멸망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성은 새로운 지상 왕국들을 사용하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중세의 통치자들의 귀중한 애독서가 되었고 지상에 신국을 이루고자하는 열망을 지도자들에게 안겨주었다. 중세가 기독교적 통일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도성’에 기인한다.
Ⅳ. 아우구스티누스의 배격
1. 펠라기우스 논쟁(Pelagian Controversy): 영국의 펠라기우스는 선행이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중세는 기독교가 국교이다 보니 행함이 없는 형식적인 죽은 믿음의 신자들이 많았다. 자유의지와 은총의 문제로 야기된 펠라기우스의 이러한 주장은 중세의 형식적 기독교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가 인간의 행위에 근거할 때 가장 저급한 신앙이 된다고 주장하며 자유의지와 은총의 문제로 야기된 그의 이러한 사상을 배격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진정한 선행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수용하는 것이며 그 때야 비로써 진정한 이웃사랑도 나온다는 것이다. 즉 펠라기우스가 종교의 윤리적인 면을 강조했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의 본질에 대해 성찰한 것이다.
2. 도나투스논쟁(Donatist Controversy): 도나투스(355)라는 주교는 박해시대에 기독교를 끝까지 숭배하다 순교한 자들과 대조적으로 기독교를 배교한 신자들인 배교자들을 쉽게 용서한 기존 교회를 떠나 새로운 분파를 만들었다. 배교했던 그들은 정결하지 않기에 더 이상 교회 안에 그들과 함께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한 도나투스의 교회 분열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또한 교회의 거룩함의 근거가 인간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모두 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사함과 정결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교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마지막 날까지 함께 존재한다고 지적했으며 인간의 육체는 타락이후 육체와 영혼이 서로 갈등관계에 있고 육체를 즐겁게 하는 일과 영혼을 즐겁게 하는 일은 대립된다고 보았다.
Ⅴ.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산
430년 로마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자 악명 높은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침공하였고 종래는 힙포까지 침입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누워있을 때 꿈에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안수를 받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음성을 듣고 찾아온 병자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어 그 병자가 기적적으로 병이 나음을 경험했지만 정작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76세를 일기로 영원한 도성에 들어갔다. 반달족이 도성을 약탈할 때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역한 교회와 도서관은 그대로 두었으며 힙포를 수도로 삼은 족장들은 점차 기독교로 개종하기에 이르렀고 아우구스티누스가 공부했던 수사학, 법학, 수학, 문학, 신학 등을 읽기 시작했다. 800년이 지나고 유럽의 대학들은 이 과목들을 중심으로 대학들의 커리큘럼을 진행하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 ‘시간’은 인간의 세계에만 존재하고 신의 시간은 ‘영원한 현재’로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인간의 역사도 현재 뿐이며 그렇기에 과거는 ‘지나간 현재’ 미래는‘다가올 현재’이다. 영원과 시간의 관점으로 통찰하는 ‘시간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최초로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아담의 타락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근원적 현재의 죄’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도 현재의 속죄사건이 되었다.
기억과 시간에 대하여 그는 인간의 내적인 공간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세 차원의 시간이 만나는 장소로 서술하는데 이로써 사람 안에 있는 인간내면의 성찰에 관한 플라톤적 프로그램, 즉 “밖으로 향하지 말라. 당신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라.”를 올바르게 평가하게 했다. 또한 여러 신학적 주제들, 창조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시간 론, 악의 기원, 구원의 은총 등에 대한 깊은 통찰로 기독교신학을 정립하였다. 그는 이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감각적 쾌락보다 더 감미로우며 땅위의 어떤 빛보다 더 밝은 빛이라는 사실을 체험하였다. 그렇기에 하나님만이 인간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목적이 되신다고 하였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선을 행하는 것조차도 인간 자신의 힘에 있지 않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임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참고문헌
김동주, 『기독교로 보는 세계역사』, (킹덤북스2014)
존 F. 하비, 『고백록, 윤리를 말하다』, (북코리아2009)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대한기독교서회 2006)
빌헬름 게에를링스, 『교부 어거스틴』, (기독교문서선교회2013)
피터 브라운, 『아우구스티누스』[출처] 어거스틴은 누구인가?|
작성자 분당 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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