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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레아 슈링크의 생애/ 독일 다름슈타트의 기독교 공동체인 기독교마리아자매회 설립자

  • 이은아 목사
  • 2024-04-03 1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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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실레아 슈링크의 생애 
독일 다름슈타트의 기독교 공동체인 기독교마리아자매회 설립자

https://youtu.be/CT9l07oJl94?si=jfNcm9NrdhyKpURr

 

 

 

바실레아 슈링크의 말씀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cXTPWjFklC1f3C01RWRLAo0QU8WMMU1

병든 사람들을 위한 은혜로운 초청 | 바실레아 슐링크 | 병상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위로

https://youtu.be/lHsf4GcO90c?si=z3JQMpS9XcvbJWVm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한달묵상 DAY1 - 갈라진 틈에 서는 자가 되라[기독교마리아자매회 암브로시아 자매 낭송]

https://youtu.be/NdMtBtOvnU0?si=S6__Kq9N4ZXneJmX

왜 세상은 이스라엘에 이토록 적대적일까요?

https://youtu.be/gQawJsXbI2M?si=2U_tnG2-twPTF1oP

 

바실레아 슐링크는 19041021일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모태 신앙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과학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다름슈타트 대학의 수학 교수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는 고통과 상실의 아픔을 경험했던 때 18살의 바실레아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체험하고 구원받았습니다. 이후 전적으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치원 교사 교육과정, 청소년 지도자 교육 그리고 사회복지 공부와 말체 성서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했고, 함부르크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바실레아는 심리학을 공부하며 순수한 영적인 문제와 인간의 정신적, 성격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문제를 분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럼으로써 예수님께 대한 신부의 사랑 가운데 영이 아닌 혼적이고 육적인 억압된 동기를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로운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이 학업의 과정에서 후일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의 동역자가 된 에리카 마다우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함부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후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12년의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1935년 동역자 에리카 마다우스와 함께 다름슈타트에서 여자 성경공부반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는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하시며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으로 주님과 깊이 연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려운 시기에 믿음과 고난의 길, 어린양의 길을 걸었습니다.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를 설립하기 전 먼저 어린 양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신 주님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이 어려움과 시련을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겨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믿음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는 믿음의 싸움에서 영적 무기인 성경 말씀을 굳건히 붙잡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나님은 이 광야의 길을 통해 앞으로 태동할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의 사역이 경건이라는 미명 아래 그녀의 개인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께 대한 온전한 사랑과 헌신이 되도록 연단하시고 정결케 하셨습니다.

바실레아 슐랭크는 1939년부터 7년 동안 다름슈타트에 머물면서 모슬렘 선교회 순회 강사직을 맡아 전쟁의 기운이 가득한 장소를 다니며 선교 강연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그동안의 많은 시련과 시험을 통해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 확신을 통해 담대하게 사역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폭격기들로 인해 캄캄한 거리를 혼자 걸을 때, 그리고 초만원의 완행 열차 안에서 머리 위로 날아가는 폭격기의 굉음을 흔히 듣곤 했는데 믿음의 기도가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열의 능력에 대해, 예수님의 승리에 대해, 천국과 지옥, 예수님의 재림과 영광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그 시기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어린 양의 길을 가라는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실레아는 20대 청년기에 조그만 부당함이나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그 성격이 그녀에게 정말 문제였습니. 끊임없는 외침이 마음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후 10년이 넘는 주님의 학교를 통해 주님은 그녀를 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녀의 기도 제목은 그분의 사랑을 진정으로 마음에 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불같은 성향을 가진 그녀와 같은 사람에겐 오랜 시간 걸리는 일이어서 성격의 한 모서리를 쪼개기 위해 여러 해 동안의 망치질이 필요했습니다. 온갖 부당한 대우를 당하면서 울어버릴 때가 많았지만 하나님의 훈련은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의 완고한 부분이 구멍 투성이가 될 때까지 계속 화살을 맞게 하셨습니다.

그녀는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회개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긍휼과 사랑으로 바실레아를 채우셨습니다. 그녀의 옛 자아는 몸부림쳤지만 어린 양의 보혈은 그 놀라운 능력을 보이며 조금씩 그녀의 완악한 마음을 녹였고, 점차 다른 이들의 죄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녀에게 어린 양의 길을 가르치셨고, 더 이상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고 인내로 시련을 참으며 부당한 질책도 견뎌내게 하셨습니다. 그 길이 예수님의 길임을 바실레아 슐링크는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뒤에는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인도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인간의 사랑은 한계에 부딪히며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고갈되는 것을 주님은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그녀가 매일 낮아지고 자기 의를 버릴 때 주님의 의를 허락하시고 그녀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분이 그녀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간증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한 번은 진정한 사랑을 하려 할 때 죄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하는가는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설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자신과 똑같은 문제와 내적 갈등을 겪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강의는 속기로 기록되었고 나중에 인쇄되어 수백 부가 배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고난과 연단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황 아래 예수님 보혈의 능력으로 믿음의 싸움을 싸웠고, 하나님은 그녀의 간증을 시험받는 많은 이들을 돕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와 그 사명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그분과 동행하며 어린 양의 길, 인내와 사랑의 길, 겸손의 길을 가는 것이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은 이전과 달리 바실레아를 완전히 소유하길 원하셔서 그녀는 매일의 삶을 재조정했습니다. 당시 전적인 헌신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중에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의 영적인 생활과 특히 그녀의 개인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또한 모슬렘 선교회 순회 사역을 통해 하나님은 자매회 설립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여러 부류의 그리스도인 단체들을 만나 성도들의 다양함을 알며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분리되고 나누어진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며 예수님의 몸인 우리가 서로 나눌 때 주님이 받으실 아픔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행 가운데서 훗날 자매 외의 영적 아버지가 된 감리교 안스바흐 지역 감독인 파울 리딩거 목사님과의 만남은 정말로 주님이 인도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바이에른 지역의 한 목사관에서 열린 모임에 초대받았을 때 리딩거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성부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고, 성령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강연을 통해 유대인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열방을 축복하는 사명을 갖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국가정보원들이 강연에 참석하여 두 번이나 비밀경찰에 불려가 몇 시간 동안 심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물질과 재산에 관련해 없지만 있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럼으로써 여러 가지를 희생하는 것에 대한 모든 잘못된 망설임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는 말씀대로 그녀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실 뿐 아니라 완전히 자유롭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행복하고 자연스러운 어린아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22살 때부터 큰 고민거리였던 자유와 율법에 관한 문제, 세상에 대한 완전 포기와 개방의 문제, 자발성과 일방적인 것에 대한 문제가 믿음 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그 열쇠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며 그분과의 연합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944911일 밤 다름슈타트는 18분간의 공중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폭격의 밤이 놀라운 영적 부흥의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여자 성경공부반 자매들이 찾아와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자신들의 죄에 대한 고백과 회개의 눈물이 없었기에 예수님의 이름이 그들의 마음속에 기쁨이 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다름슈타트를 폐허로 만든 그날 밤의 사건이 남은 자들에게 깊은 회개를 하게 했습니다. 회개를 통해 자신의 죄는 물론 조국 독일의 심각한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 공부방 가운데 회개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심판이 이 나라에 임할 때 헌신하여 기도와 간구를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겸비하지 못했으며, 매일 밤 수천 명의 형제자매들이 죽어가는데도 그들을 위해 중보하지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눈동자와 같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잔인하게 학대받고 있을 때 그들에게 전혀 도움의 손길을 펴지 못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 아주 세련되고 종교적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고, 매주 성경 공부에 참여했으며, 중보기도회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회개와 부흥이 일어나면서 그들은 함께 공동체로 살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어 1947330일에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가 탄생했습니다. 영적 아버지인 리딩거 목사님이 공동체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어머니의 이름을 딴 마리아 자매회를 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주신 이유는 예수님이 나실 때부터 골고다 십자가까지 함께하신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의 길과 사랑의 헌신을 하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12년간의 오랜 기다림과 준비를 통해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가 태어났습니다.

 

194954일 어느 날 바실레아가 방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님이 영광 받으실 예배당을 지어 주님께 경배드리라는 내적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즉각적으로 응답했습니다. "! 주께서 뜨겁게 찬양과 사랑을 받으실 자리,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하나님의 위대함이 선포되며, 찬양이 드려질 곳을 마련하기 위해 뭐든 가능한 일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돈도 땅도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자 선하신 하늘 아버지는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말씀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 즉 이제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에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하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이후 많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사람들은 병원이나 양로원을 짓고 그곳에서 일할 자매들을 보내주길 원했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릴 필요성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영적인 상담을 할 필요성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아버지 리딩거 목사님이 소천하셨기에 모든 일의 궁극적인 책임은 바실레아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그녀를 시련의 어두운 길로 인도하셔서 사람으로부터 오는 도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움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동안 겸손케 하셨고,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영광 받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예배당 건축 공사는 거의 자매들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그들은 건축 현장 옆에 수시로 들어가 기도할 수 있는 기도 천막을 세워 놓았습니다. 하루는 자매회에서 함께 공사하는 날이었습니다. 조그마한 궤도를 놓고 그 위에 큰 덤프차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축복과 건축의 성공을 위해 천막에서 기도를 한 뒤에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덤프차의 바퀴가 선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덤프차는 수백 파운드나 되는 흙을 싣고 있었습니다. 매번 궤도에 차를 올려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일도 계속 지연되고 급기야 자매들은 기운을 잃고 기진맥진하였습니다. 그때 한 자매가 "이대로 계속할 수는 없어요. 우리 다 천막에 들어가 기도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천막에서 하나님께서 왜 오늘 작업하는 동안 우리의 축복을 빼앗아 가시는가를 보여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자매들 중 한 자매가 그 마음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다른 자매 앞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 자매가 마침내 자기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있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지 않거나 너무 천천히 하거나 빨리 일을 하여 다른 자매의 눈에 모래가 들어가게 하거나, 도구나 연장을 깨끗이 씻어 놓지 않는다든지 하는 경우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는 그 자매만의 분노는 아니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는 자매들 사이에 분노 섞인 판단과 남에 대한 저주와 더불어 어떤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습니다. 자매들이 서로의 잘못에 대해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자 마음의 분노로 팽팽해진 긴장의 끈은 눈 녹듯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 후 다시 일터로 나가 작업을 진행하자 놀랍게도 덤프차는 다시 탈선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기 전에 주님은 먼저 자매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셨고, 재정의 위기 때마다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배당은 아무 빚도 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놀라우신 방법으로 완공되었습니다. 19519월 새로 지은 마더하우스로 옮겨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매회의 주된 사역인 기도와 선포의 사역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역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주님은 바실레아를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며 시간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 그분만을 섬기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동안 그녀는 주님 자신보다는 주님의 사역에 온통 주의를 기울여 왔었는데, 그 이후 오직 하나님께로만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녀는 가급적 빨리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매일 아침 그날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적어놓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계획한 일을 마치기 위해 정력을 완전히 일에 쏟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침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모두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면서 그 목록을 치워놓았습니다. 자신이 계획한 모든 것을 완수하려고 궁리하는 대신 성령께서 사소한 것까지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가 설립되기 전에는 말씀 강연을 마친 후 종종 그녀가 전한 말씀의 원고를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제 설교를 적어놓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게는 글 쓰는 은사가 없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다 1952년 겨울 하나님과 깊은 교재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쓰는 일에 흥미를 느껴본 일도 없고, 전혀 문학적인 소질이 없었던 그녀로서는 성령께서 감동시키시는 대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마음과 영혼이 성령께 순종하며 열정에 사로잡혀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글을 쓰곤 했습니다. 내적인 갈등 속에서도 글쓰기 사역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점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명으로 인해 믿음 안에서 인내와 순종의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비방과 중상으로 인해 극소수의 서점 외에는 그녀의 책들을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자주 책을 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느끼게 했습니다. 외적으로 무의미해 보이는 이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195554은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그날 아침 시간에 하나님께서 바실레아에게 미래의 가나안 땅에 대한 사명과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명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파악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병중에 있었습니다. 동역자 에리카 마다우스가 아침 식사를 가져왔는데,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역과 미래의 가나안 땅의 그림을 그려 보였습니다. 에리카는 너무 놀란 나머지 가져온 식사 쟁반을 거의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54일 그 아침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하나님의 시간, 즉 카이로스였습니다. 성경의 가나안이 전 세계 백성을 위한 축복의 중심지가 된 것과 같이, 이곳 다름슈타트의 가나안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적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취에 이르기까지 11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독일 헤센주와 22명의 소유주가 있는 땅을 얻게 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가나안은 모래땅이어서 물이 너무나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했을 때 주님은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기르리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샘을 파는 샘을 파는 전문가들에게 가나안에서 물을 찾게 했지만, 그들은 처음에 가나안 땅 밑에는 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매들은 말씀에 의지해 믿음의 기도를 계속 드렸습니다. 물이 아직 나오지 않은 가운데 믿음으로 연못 바닥을 깔았습니다. 수년 동안 온갖 수모와 믿음의 시련, 영적 싸움을 겪었지만 마침내 샘에서 물이 솟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샘에서 나오는 물은 주변의 다른 수원지에 비해 25배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수도 관계자도 정말 기적이 이곳에서 일어났다고 감탄했습니다. 지금도 기독교 마리아 자매의 가나안에는 아버지의 선하신 샘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는 1961년 이스라엘의 벳 아브라함이라는 지부를 하나님의 은혜로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의 생명줄을 던지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세계 여러 나라에 지부를 세우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찬양 사역의 중요성을 일깨우셨습니다. 바실레아가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낼 때 아름다운 알프스의 초원과 호수, 눈 덮인 산들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깊은 사랑과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분의 영광을 찬송하는 예배당과 찬양판을 세우고 싶었습니다.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영광드리고자 하는 소원을 넣어주고 싶었습니다. 바실레아와 자매들은 찬양판에 성경 구절과 찬송과 가사를 새겨 아름다운 명소의 빛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어느새 여름날 찬양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탄 차는 마치 달리는 찬양 예배당과 같았습니다.찬양을 허락하셨던 지역과 장소들을 방문해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감사의 표시로 찬양판을 붙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역과 마찬가지로 이 사역에도 대단히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들이 놓여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 땅은 거의 개인 소유가 아닌 자연보호구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찬양판을 설치하기 위해 관계기관에 요청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한 유명 관광센터로부터 찬양판 설치 허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곳 주민들 사이에 극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반대에 부딪히면서 자매들의 믿음은 점점 높아졌습니다. 바실레아와 자매들은 하나님이 해주실 일들에 대해 미리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아름다운 스위스 산정 40여 군데에 찬양판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와 소동을 겪으며 자신들의 믿음의 목표가 너무나 작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3년 사이에 알프스 산에 100개 이상의 찬양판이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스위스 전역에 200여 개의 찬양판이 설치되어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바실레아와 자매들은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에 로스펠드 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 산 맞은편에 하나님을 미워하며 온갖 악을 행한 히틀러 소유의 별장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행해진 신성 모독의 죄들을 생각하자 그런 곳일수록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 들리는 기념비가 세워져야 한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일어났습니다. 기쁘게도 얼마 후 찬양판과 기념비를 로스펠드산에 세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세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산들이 흔들리고 녹아내리며, 온갖 높은 산들이 주께 영광을 돌리니 주님만이 홀로 영원히 영광을 받으소서.

1962년과 1963년에는 온갖 어려움과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통과하며 스위스 에시와 그리스 알프의 작은 찬양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그 예배당은 지금도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처소로서 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바실레아의 가족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따라가는 그 길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수학 교수셨지만 하늘의 수학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일이 사전에 분명한 예상, 목표치와 재정 계획이 세워진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계속되는 바실레아의 믿음의 모험에 놀라셨고, 결과적으로 가족의 명예가 실추될 위험성을 느끼셨습니다. 바실레아가 대화 가운데 가나안 땅을 구입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경악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가난한 사역이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명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확신하게 되셨습니다. 그녀의 딸이 믿음의 길을 가는 그 여러 해 동안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신 것을 본 후로 아버지는 세상의 수학이 아니라 하늘의 수학을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바실레아 슐링크는 자매회가 설립된 때로부터 평생 믿음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의존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는 강요가 아닌 사랑의 마음으로 자유 의지를 들여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그녀뿐 아니라 자매의 모두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았습니다.

바실레아는 오랫동안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았고 체력이 약해 매사에 힘들어 했습니다.자매회가 점점 커져가면서 맡겨진 많은 임무를 감당해야 할 힘을 어디서 얻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 처한 그녀를 도우셔서 약할 때 강한 힘을 허락하셨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낄 때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으며 예수님은 나의 힘이 되십니다. 주의 보혈의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이 말을 신뢰했습니다. 그것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외칠 때마다 항상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 그 힘을 통해 다시 일어나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1975년 늦여름 주님은 바실레아를 밧모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러 주 동안 밧모 섬에 머물며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던 동굴에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밧모섬에 거하는 동안 주님은 그녀에게 이 땅에서 할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남은 생애 동안 2세대 사람들이 구원을 얻도록 경종을 울리며, 그들이 주님의 고통과 아픔에 동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바실레아 슐링크와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는 선지자적 경고와 복음 증거, 사역, 문서 사역, 방송, 선교, 문화 사역, 믿음의 공동체 사역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을 전했습니다. 바실레아는 평생에 걸쳐 1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으며, 현재 약 6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녀는 200132196세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인생의 모토는 주님이 내게 두 번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랑하게 되면 순종하듯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멘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녀의 묘지에는 아멘의 기념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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