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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캅, 사도요한의 제자
폴리캅은 주후 69년경 소아시아의 서머나(지금의 터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로 주님의 제자들이 거의 다 순교하였고, 제자 중 사도 요한만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므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폴리캅은 일찍이 기독교로 개종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그는 주님을 뵌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과 교제했습니다. 그는 종종 주님이 행하신 기적이나 가르침들에 대해서 자기 생도에게 상세히 들려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항상 이 이야기는 주님을 직접 본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 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고수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으로부터 받은 신앙과 전통을 전승하여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는 사도 요한에 의해 요한계시록 2, 3장에 언급된 아시아의 7교회 중 하나인 서머나 교회의 감독직에 임명되었으며 20여 년 동안이나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였고, 폴리캅은 자기 고향인 서머나에서 사역하였는데 두 교회는 불과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폴리캅의 신앙 인격은 서머나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알려져 있었습니다.
서머나에 있는 이방인들은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로 사람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거나 예배를 드리지 말라고 말하는 우리 신들의 파괴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던 로마의 감독까지도 폴리캅을 대할 때에는 특별한 대우를 하였습니다. 그 한 예로 부활절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로마로 갔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소아시아에서는 주님이 죽으신 그날을 요일에 상관없이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반면 로마에서는 부활절 날짜를 따로 정해서 기념하지 않고 그날은 요일의 상관없이 매 주일을 주님이 부활하신 날로 기념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그 상황에서 로마 교회가 고집을 피워 양 교회가 분리로 치달아갈 때 폴리캅은 신앙 안에서의 일치를 주장하면서 절기나 금식에 관한 차이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분리 상황을 조절하였습니다. 그 당시 소아시아와 로마 사이의 의견의 일치를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의 신앙 인격을 잘 알고 있던 로마 감독은 그에게 자기를 대신해서 성만찬을 집례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이처럼 그가 고대 교회에서 특별한 권위와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사도들의 시대를 연결하는 교회사적 입장이 아니었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신앙 인격을 언급할 때는 그의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폴리캅의 순교적 죽음은 고결하였던 그의 생애에 절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폴리캅은 이 중요한 시기에 중심적인 문제들과 도전들 즉 국가에 의한 박해에 점증하는 위협과 출연하는 영지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습니다. 그는 이 운동에 가장 카리스마적이고 신학적으로 혁신적인 교사들 가운데 한 사람인 말시온에 대한 반대로 특히 유명합니다. 말시온은 창조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사랑의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근거에서 구약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바울의 10개의 서신과 누가 복음의 편집본만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가연설을 주장하던 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나타나신 곳은 절대 참이 아니며, 그분은 실제로 죽지도 않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가 155년 로마 주교 아네스투스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한 번은 그가 로마 교인이었다가 이단적 교훈을 가르침으로 인해 144년 교회로부터 추방당한 말시온과 맞닥뜨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시온이 “저를 아시겠습니까라?”고 묻자 폴리캅은 “암 알고 말고 사탄의 맏아들인 걸” 하면서 면박을 주었습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폴리캅의 저작 중 유일하게 주후 135년경에 쓰여진 빌리보 교회에 보낸 편지가 남아 있는데 60회 정도 신약 성경의 기록들을 다양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로부터 발견되는 주요 사상은 전통 교리를 위한 전승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신성 및 인성, 친구와 적을 위한 중보기도, 부활과 심판, 9장은 이그나티우스의 순교에 주목하며 인애와 선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존경받는 아시아의 교사로서 순교는 자신의 신앙의 확실성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모범과 순교시의 선포를 통해 남은 기독교인들과 이방 세계에까지 신앙의 능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이신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의의 보증을 확고부동하게 끊임없이 붙잡읍시다. 그는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고 그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는 아무 거짓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그 안에서 살도록 하려고 그는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참을성 있는 인내의 모방자가 됩시다. 우리가 그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아서 그를 영화롭게 합시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가 우리를 위하여 친히 남겨 놓으신 모범이고 우리가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에서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정치적 이유였습니다. 로마의 평화를 외치면서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결집력을 형성하기 위해서 로마 황제를 주님이라고 부르도록 강요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이외에는 어떤 사람도 그들의 주님이 될 수 없고,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의 주님이시기에 무자비하고 불공평한 박해에 대항하여 교회는 아무 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위해서 기꺼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통당하는 것을 최상의 영광으로 알았기 때문에 죽음의 자리에서 언제나 초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치욕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고문하고 희롱하고 죽이는 상대방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더 나은 삶, 영원히 썩지 않는 보상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기독교의 능력은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2세기 중엽 안토니우스 피우스의 치세 때에 또다시 순교의 열풍이 서머나에도 불어왔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한 많은 진실한 신자들이 잔인한 고문과 형벌을 당했는데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도 이때 순교했습니다.
폴리캅은 체포되기 사흘 전 밤에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자기가 베고 자던 베개가 불이 붙어 거의 타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 때문에 산채로 화형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며칠 뒤 무장한 병사들이 한 노예 소년을 앞세우고 폴리캅을 체포하러 왔을 때 폴리캅은 그들이 먹고 마실 식탁을 준비하게 하여 그들로 마음껏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만 방해를 받지 않고 기도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서서 기도했는데 거의 두 시간이 넘는 그의 기도를 아무도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은 사람들은 놀랐고 이렇게 경건한 노인을 잡으러 왔다는 것을 후회했습니다. 이윽고 압송되어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숨어 있던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늘로부터 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폴리캅아! 강건하여라. 그리고 용감하게 행동하여라.”
폴리캅의 명성과 고령을 생각한 지방 총독이 말하였습니다. “맹세하시오. 그러면 당신을 석방하겠소. 그리스도를 욕하시오.” 죽음을 벗어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폴리캅은 말했습니다.
“86년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겼지만 그동안 그분은 한 번도 나에게 그릇 행하신 적이 없었는데 어찌 내가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총독의 협박이 이어졌습니다.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너를 맹수들에게 던지겠다.” 그래도 굽히지 않자 “네가 맹수들을 무시하므로 나는 너를 불태울 것이다.” 그러자 폴리캅은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은 오직 짧게 태우고 잠시 후에 소멸되는 불을 가지고 위협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악한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다가오는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당신들은 지체하고 있습니까? 오십시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십시오.”
기둥에 묶인 폴리캅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여, 제가 주님을 찬미하는 것은 이 시간에 저로 하여금 거룩하신 성령으로 다시 사신 그리스도에 취하여 순교자의 대열에 참여할 만한 자로 여겨주심이니이다. 이제 저는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주님을 찬미하고 또 찬미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에게 영광을 돌리나이다.”
폴리캅의 기도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기둥에 묶인 폴리캅은 불에 상하지 않았고, 불은 폴리캅의 주위를 아치 형태로 감싸 순교자를 지키는 듯하였고, 경기장은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결코 불로는 폴리캅을 처형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형 집행인은 칼로 찌르라고 명령했습니다. 칼로 그의 몸을 찌르니, 솟구쳐 오르는 그의 피는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을 꺼버렸습니다. 그의 시체는 완전히 태워졌습니다. 그것은 나중에라도 폴리캅을 추모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다 헛수고 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서머나 교회를 통하여 수백 년 동안 전해져 내려오면서 그에 관한 기억을 늘 생생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폴리캅이 쓴 편지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도시대의 증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에 교회의 논쟁을 해결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어떤 핍박에도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신의를 잃지 않은 주님의 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내가 나를 구원하신 이를 욕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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