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말씀으로 행복하고 온전해지는 예수참영성원
이웃 앞에 겸손이란?
한 수도자가 어느 원로에게 물었다.
"겸손이란 건 대체 무엇입니까?"원로는 대답했다.
"자네를 해롭게 하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면 그게 겸손이 되지."
그런데 그 정도의 높이에 도달해 있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수도자가 다시 묻자, 원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도망가 버려. 아무 말도 않겠다고 작정하고 말야."(Guy p 90 n 1)
= 사실 겸손의 왕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겸손히 가장 낮은 곳에서까지 모든 곳에 빛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닮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우리를 높게 보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경이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겸손을 닮는 것은 나에게 해를 주는 사람을 사랑하여 기도하고 도와주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지극한 사랑이며 지극한 비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모두에게 해가 되는 미움과 다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도망가라고 한 것입니다.
어느 원로가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낮추면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그는 유혹자인 악마들을 불로 태우는 것이 됩니다." (Guy p 90 n 2)
= 용서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면 어떤 것이라도 용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에게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여 온 세상의 주인인 하나님이신 부모가 용서를 했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그 사람이 죄의 무게를 알기 위해 값을 치러야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도 많이 줄이고 줄이십니다. 그러니 겸손하고 진심어린 사죄는 정말 엄청난 능력입니다.
어느 수도자가 시소에스 교부에게 이렇게 문의했다.
"나 자신을 곰곰이 성찰해 보니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내게서 떠나지 않음이 확인됩니다. "원로는 그에게 말했다.
"자네 영혼이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야. 자네가 자신을 모든 피조물보다 열등한 것으로 안다면 그건 훌륭한 일이지.
런 생각을 하면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을 개선하고 겸손으로 이끌어주는 일이야." (Sisoès 13)
= 사람이 생각지 못한 교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피조물보다 가장 훌륭하고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맘대로 사용하도록 맡기셨다고 그들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노자는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르는 많은 선조들도 자연과 세상을 지혜롭게 살피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다른 피조물인 자연이 사람보다 열등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더 못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천국에는 동물형상을 한 천사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식물들은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기꺼이 음식으로 내어줍니다. 식물들도 아픈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줍니다. 우리가 작은 감사와 사랑과 축복을 보내면 기뻐하며 온 힘을 다해 우리를 돕습니다. 눈물 나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 자녀의 거룩하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닮기 위해 나아가는 동역자일 뿐입니다. 오히려 사람이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웃뿐만 아니라 자연의 풀 한 포기와 광대한 우주도 소중히 여겨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참된 겸손은 이웃 안에 있는 하나님 형상을 기뻐하며 그들을 먼저 높여주는 것입니다.
스케테의 올림포 교부는 노예 출신이었다. 그는 해마다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자기의 주인들에게 스스로 번 돈을 내놓곤 했다. 주인들은 그에게 인사하기 위해 마중을 나왔지만, 그러나 원로는 대야에 물을 담아 그들의 발을 씻어 주려 했다. "안됩니다, 사부님. 우리를 거북하게 하지 말아요!"라고 주인들이 말해도,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제가 여러분의 노예임을 확인하고 여러분이 저를 놓아 주어 하느님을 섬기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그 대신 저는 여러분의발을 씻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벌어온 것도 받아 주십시오."주인들이 고집하며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올림포는 그들에게 말했다. "제 말을 믿어 주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제 돈을 받지 않으시겠다면, 저는 여기 남아 여러분을 섬기며 살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인들은 아주 공손하게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그가 출발할 때도 그를 예의 있게 배웅해 주면서 자기들 대신에 동냥을 줄 수 있도록 필요한 돈을 그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 모든 일로 하여 그는 스케테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교부가 된 올림포는 자신이 교부가 되었다고 교만해서 옛 주인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올림포 자신이 교부가 되어 존경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옛 주인들이 자신을 노예라고 함부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교부가 되도록 높여준 은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옛 주인들은 훌륭한 성품으로 노예인 올림포를 교부로 세우고 섬기니 훌륭한 분들입니다. 올림포도 자신이 받은 큰 은혜를 잊지 않고 옛 주인을 섬기니 훌륭합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당신을 도와주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영이 당신 안에 있는지 그 사람 안에 있는지 당신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 당신의 종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N 317) 겸손 75.
= 사람들은 노예를 쉽게 무시합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의 형상인 존중받을 존재입니다. 그를 무시함은 그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 회사에서 내 아랫사람, 학교에서 내 후배를 함부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나는 교훈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는 또 말하였다.
"때가 되기 전에는 사람을 가르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평생토록 설익은 지성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기 좋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그중에서 한 가지라도 정말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나에게 큰 유익입니다. 다른 사람의 지혜를 들으며 그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겸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말해야 할 때, 자신을 나타내야 할 때, 하나님 앞에 서는 담대함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다면 그는 참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어느 수도자가 빠스똘 교부에게 물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읍니까?" 원로가 대답했다.
"자네는 이방인의 신중함을 지녀야 하네. 어디에 있건 자네의 견해란 걸 찾으려 애쓰지 말게. 그러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테니까." (Poemen S4)
= 어디서든 내 의견과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은 참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 의견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쉽게 내 의견을 내고 관철하려고 하면 부딪치고 갈등이 쉽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평화가 깨지고 기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먼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살피고,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면서, 모두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 의견을 낸다면 모두가 평화롭도록 잘 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의 평안과 기도생활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겸손히 먼저 의견을 내고 더 좋은 다른 의견을 칭찬하고 세워주는 것고 겸손입니다.
겸손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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