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말씀으로 행복하고 온전해지는 예수참영성원
조지 뮬러의 생애
5만번 기도응답을 받은 사람ㅣ고아들의 아버지
https://youtu.be/u5T47qO1Zd4?si=UXi4nZgwkNMK0u2S
조지 뮬러의 생애는 그의 타락한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삶으로 변화되어 궁극적으로 수많은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기까지의 여정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초기 삶과 회심 (1805-1825)
• 조지 뮬러는 1805년 9월 27일 독일 크로펜스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술과 돈을 좋아했고 세상적인 원칙으로 자녀들을 키웠습니다.
• 14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카드놀이를 하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6세에는 아버지의 돈을 탕진하고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 그는 상습적인 도둑, 술꾼, 거짓말쟁이였으며, 신학 학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고, 성경도 소유하지 않았으며, 예배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1825년 11월 중순, 친구의 집에서 열리는 기도 모임에 참석하면서 그의 삶은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선교사를 보며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고, 그날 밤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 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 그 후 나쁜 친구들과의 교제를 끊고 술집 출입과 습관적인 거짓말을 멈추었으며, 성경을 읽고 자주 기도하며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뜨거워졌습니다.
선교사의 길과 장애물 (1826-1829)
• 기도 모임에서 만난 에르머가르데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영적인 기쁨과 평안을 잃었으나, 그녀가 부와 안락을 택하고 뮬러가 선교사의 길을 포기하지 않자, 잃었던 은혜와 평안이 돌아왔습니다.
• 독일 선교 단체에 가입하려면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했지만, 아버지는 가난한 선교사의 길을 반대하며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뮬러는 혈육의 정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께만 필요한 것을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독일어 가정교사 일을 맡겨 학비와 용돈을 충당하게 하셨습니다.
• 선교사가 되기 위한 또 다른 장애물은 2년간의 군복무였으나, 병약함으로 인해 평생 군 면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장애물들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훈련하고 연단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 건강 악화로 런던 협회의 선교 훈련을 중단하고 자유롭게 사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초기 목회와 믿음의 결단 (1829-1831)
• 1829년 12월, 엑스머스에서 3주간의 설교를 요청받았고, 이후 타임머스 마을 베넷 교회에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설교 주제와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며 전적으로 성령님께 의지하여 설교했습니다.
• 1830년 10월 7일, 메리 그로브스와 결혼했는데, 메리는 그의 훌륭한 믿음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던 주님의 삶을 본받아 화려한 은 제품을 팔아 구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교회의 좌석 요금 제도가 복음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이를 폐지하고, 생활비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대단한 믿음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헌금통을 마련하여 목회자 생활을 돕고자 하는 사람은 무명으로 돕도록 했습니다.
• 1830년 11월 18일, 돈이 바닥났을 때 기도하자 4시간 후에 한 자매가 일주일 생활비를 가져다주었고, 그들은 주님의 신실하심에 기뻐했습니다.
• 1831년 1월, 다시 돈이 필요했을 때 즉시 응답받지 못하자 일시적으로 의심하기도 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빚을 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브리스톨 사역과 고아원 설립 (1832-1836)
• 1832년 5월 21일 브리스톨로 이사하여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전염병이 돌았을 때도 어린이들과 병자들을 심방하며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했으며, 아내의 만류에도 병자들을 찾아갔습니다.
• 1834년, 국내외 복음 전파를 위한 선교 기관인 성경 연구원을 설립했습니다. 이 기관의 목적은 성경 교육, 성경 배포, 선교사 지원 등이었고, 빚을 지거나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구하는 것을 경영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 성경 연구원 활동 중, 무료 주간 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강제로 빈민 수용소에 가야 했던 소식을 접하고 고아원 설립 계획을 세웠습니다.
• 1835년, 고아원 설립을 위해 하나님께 1,000파운드, 충분한 집, 3-4명의 그리스도인 직원, 옷과 침구, 식기 등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 처음에는 냉소적인 반응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조력자와 물품, 재정적 후원자들을 보내주셨고, 아내 메리도 믿음을 갖게 되어 고아원 사업의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 결국 윌슨 6가에 오래된 주택의 세를 얻어 들어갔고, 기도했던 모든 것을 응답받았습니다.
• 1836년 5월, 뮬러의 딸 리디아를 포함한 43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고아원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뮬러는 딸과 다른 고아들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양육했습니다.
• 같은 해 윌슨 6가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고아원이 생겨 96명의 고아들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대중 앞에서 돈에 대해 언급하거나 모금하지 않았습니다.
시련과 지속적인 하나님의 공급 (1836-1845)
•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식품, 직원 봉급, 의류, 교과서 등을 넘치도록 채워주셨지만, 늘 여유롭지는 않았고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했습니다.
• 뮬러는 수중에 한 푼도 없을 때조차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은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제공하시리라 믿습니다"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정확하게 응답하셨습니다.
• 펠리 크레이그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모금하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뮬러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야. 난 돈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구하지 않겠네. 난 하나님께 구하겠어"]라고 답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 심지어 직원들이 급료를 포기하고, 자신의 귀중품을 팔아 헌금하며 고아들을 도왔습니다.
• 어려운 시기에도 뮬러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기도했고, 하나님은 과부의 헌금 500파운드와 같이 막대한 금액을 보내주시는 등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고아원 확장 (1845-1870)
• 1845년 10월, 뮬러는 고아원 때문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편지를 받고 새로운 건물 신축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료 사역자들의 동의를 얻어 아내 메리와 함께 기도한 지 36일 만에 1,000파운드의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슐리 다운의 7에이커 땅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었으며.
• 건축 자금 마련을 위해 447일 동안 기다린 끝에 2,000파운드의 기부금이 들어와 1847년 7월 5일 기공식을 시작했습니다.
• 1849년 6월 18일, 300명의 고아들을 위한 새 고아원이 완공되었고, 총 335명이 생활했습니다.
• 고아들의 수를 3배로 늘려 700명을 더 수용할 수 있는 고아원을 세우기로 결심했고,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그는 확신을 가지고 계속 추진했습니다.
• 두 번째 고아원은 그가 기도를 시작한 지 7년 후에 완성되었으며, 총 35,335파운드의 비용이 들었지만 모두 기도로 충당되었습니다.
• 세 개의 고아원으로도 부족함을 느껴 2개의 고아원을 더 세워 2,000명의 고아들을 수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땅 매입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되었습니다.
•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건물은 4년이 걸려 1870년 1월 6일에 모두 완공되었습니다. 뮬러는 ["믿음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께 돌릴 영광이 없습니다. 믿음은 사람의 능력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말년과 유산 (1870-1898)
• 그의 신실한 동역자였던 아내 메리가 사망했지만, 그의 사역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 1년 반 후 딸 리디아가 조수 침 나이트와 결혼하여 그의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 뮬러는 72세부터 수산나 그레이스 젠저와 재혼하여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로 연속적인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 88세가 될 때까지 20만 마일을 여행하며 42개국에서 설교했으며, 93세에 애슐리 다운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날까지 고아들을 돌보며 섬겼습니다.
• 그의 삶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창조적인 믿음을 가진 기도의 사람으로, 그의 믿음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후세에도 계속 빛날 것입니다.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