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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뮬러의 생애/ 5만번 기도응답을 받은 사람ㅣ고아들의 아버지

  • 이은아 목사
  • 2025-09-11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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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5.20.178.30

조지 뮬러의 생애

5만번 기도응답을 받은 사람ㅣ고아들의 아버지

https://youtu.be/u5T47qO1Zd4?si=UXi4nZgwkNMK0u2S

 

 

 

조지 뮬러의 생애는 그의 타락한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삶으로 변화되어 궁극적으로 수많은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기까지의 여정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초기 삶과 회심 (1805-1825)

조지 뮬러는 1805927일 독일 크로펜스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술과 돈을 좋아했고 세상적인 원칙으로 자녀들을 키웠습니다.

14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카드놀이를 하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6세에는 아버지의 돈을 탕진하고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상습적인 도둑, 술꾼, 거짓말쟁이였으며, 신학 학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고, 성경도 소유하지 않았으며, 예배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82511월 중순, 친구의 집에서 열리는 기도 모임에 참석하면서 그의 삶은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선교사를 보며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고, 그날 밤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 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 후 나쁜 친구들과의 교제를 끊고 술집 출입과 습관적인 거짓말을 멈추었으며, 성경을 읽고 자주 기도하며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뜨거워졌습니다.

 

선교사의 길과 장애물 (1826-1829)

기도 모임에서 만난 에르머가르데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영적인 기쁨과 평안을 잃었으나, 그녀가 부와 안락을 택하고 뮬러가 선교사의 길을 포기하지 않자, 잃었던 은혜와 평안이 돌아왔습니다.

독일 선교 단체에 가입하려면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했지만, 아버지는 가난한 선교사의 길을 반대하며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뮬러는 혈육의 정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께만 필요한 것을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독일어 가정교사 일을 맡겨 학비와 용돈을 충당하게 하셨습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한 또 다른 장애물은 2년간의 군복무였으나, 병약함으로 인해 평생 군 면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장애물들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훈련하고 연단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건강 악화로 런던 협회의 선교 훈련을 중단하고 자유롭게 사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초기 목회와 믿음의 결단 (1829-1831)

182912, 엑스머스에서 3주간의 설교를 요청받았고, 이후 타임머스 마을 베넷 교회에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설교 주제와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며 전적으로 성령님께 의지하여 설교했습니다.

1830107, 메리 그로브스와 결혼했는데, 메리는 그의 훌륭한 믿음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던 주님의 삶을 본받아 화려한 은 제품을 팔아 구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교회의 좌석 요금 제도가 복음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이를 폐지하고, 생활비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대단한 믿음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헌금통을 마련하여 목회자 생활을 돕고자 하는 사람은 무명으로 돕도록 했습니다.

18301118, 돈이 바닥났을 때 기도하자 4시간 후에 한 자매가 일주일 생활비를 가져다주었고, 그들은 주님의 신실하심에 기뻐했습니다.

18311, 다시 돈이 필요했을 때 즉시 응답받지 못하자 일시적으로 의심하기도 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빚을 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브리스톨 사역과 고아원 설립 (1832-1836)

1832521일 브리스톨로 이사하여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전염병이 돌았을 때도 어린이들과 병자들을 심방하며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했으며, 아내의 만류에도 병자들을 찾아갔습니다.

1834, 국내외 복음 전파를 위한 선교 기관인 성경 연구원을 설립했습니다. 이 기관의 목적은 성경 교육, 성경 배포, 선교사 지원 등이었고, 빚을 지거나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구하는 것을 경영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성경 연구원 활동 중, 무료 주간 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강제로 빈민 수용소에 가야 했던 소식을 접하고 고아원 설립 계획을 세웠습니다.

1835, 고아원 설립을 위해 하나님께 1,000파운드, 충분한 집, 3-4명의 그리스도인 직원, 옷과 침구, 식기 등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냉소적인 반응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조력자와 물품, 재정적 후원자들을 보내주셨고, 아내 메리도 믿음을 갖게 되어 고아원 사업의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윌슨 6가에 오래된 주택의 세를 얻어 들어갔고, 기도했던 모든 것을 응답받았습니다.

18365, 뮬러의 딸 리디아를 포함한 43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고아원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뮬러는 딸과 다른 고아들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양육했습니다.

같은 해 윌슨 6가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고아원이 생겨 96명의 고아들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대중 앞에서 돈에 대해 언급하거나 모금하지 않았습니다.

 

시련과 지속적인 하나님의 공급 (1836-1845)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식품, 직원 봉급, 의류, 교과서 등을 넘치도록 채워주셨지만, 늘 여유롭지는 않았고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했습니다.

뮬러는 수중에 한 푼도 없을 때조차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은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제공하시리라 믿습니다"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정확하게 응답하셨습니다.

펠리 크레이그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모금하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뮬러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야. 난 돈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구하지 않겠네. 난 하나님께 구하겠어"]라고 답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심지어 직원들이 급료를 포기하고, 자신의 귀중품을 팔아 헌금하며 고아들을 도왔습니다.

어려운 시기에도 뮬러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기도했고, 하나님은 과부의 헌금 500파운드와 같이 막대한 금액을 보내주시는 등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고아원 확장 (1845-1870)

184510, 뮬러는 고아원 때문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편지를 받고 새로운 건물 신축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료 사역자들의 동의를 얻어 아내 메리와 함께 기도한 지 36일 만에 1,000파운드의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슐리 다운의 7에이커 땅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었으며.

건축 자금 마련을 위해 447일 동안 기다린 끝에 2,000파운드의 기부금이 들어와 184775일 기공식을 시작했습니다.

1849618, 300명의 고아들을 위한 새 고아원이 완공되었고, 335명이 생활했습니다.

고아들의 수를 3배로 늘려 700명을 더 수용할 수 있는 고아원을 세우기로 결심했고,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그는 확신을 가지고 계속 추진했습니다.

두 번째 고아원은 그가 기도를 시작한 지 7년 후에 완성되었으며, 35,335파운드의 비용이 들었지만 모두 기도로 충당되었습니다.

세 개의 고아원으로도 부족함을 느껴 2개의 고아원을 더 세워 2,000명의 고아들을 수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땅 매입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되었습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건물은 4년이 걸려 187016일에 모두 완공되었습니다. 뮬러는 ["믿음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께 돌릴 영광이 없습니다. 믿음은 사람의 능력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말년과 유산 (1870-1898)

그의 신실한 동역자였던 아내 메리가 사망했지만, 그의 사역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년 반 후 딸 리디아가 조수 침 나이트와 결혼하여 그의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뮬러는 72세부터 수산나 그레이스 젠저와 재혼하여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로 연속적인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88세가 될 때까지 20만 마일을 여행하며 42개국에서 설교했으며, 93세에 애슐리 다운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날까지 고아들을 돌보며 섬겼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창조적인 믿음을 가진 기도의 사람으로, 그의 믿음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후세에도 계속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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