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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인디언 선교사의 짧고 경건한 생애

  • 이은아 목사
  • 2025-11-17 2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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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인디언 선교사의 짧고 경건한 생애

 https://youtu.be/oHJS1edS1oY?si=-5Rhl8fl4yfCh7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1718420일 코네티컷에서 아버지 예레미야 브레이너드와 어머니 도로시 이슬라 사이의 여섯 번째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엄격한 청교도 가정에서 자랐으며, 아버지 예레미야는 코네티컷 지방의 입법 의원이었고 가정에서 권위와 질서를 중시하며 가족의 영적 건강을 위해 개인 금식일을 정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생활을 추구했습니다. 브레이너드는 어려서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같은 작품을 읽으며 구원과 죽음 같은 영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브레이너드가 어렸을 때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5년 뒤 어머니마저 브레이너드가 14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코네티컷 강 건너편의 이스트 해덤으로 이사하여 결혼한 누나 제루샤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이 시절 자신의 신앙이 신중하고 진지했지만 참된 은혜는 없었던 신앙이었다고 묘사했습니다.

 

열아홉 살에 농장을 물려받은 그는 더럼으로 이사해 농사일을 했으나 농사에 마음이 없었고 일반 교양 교육을 동경했습니다. 농장에서 1년을 보낸 후 1738년 여름, 스무 살이 되던 그는 다시 이스트 해덤으로 돌아와 예일 대학 입학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농장 시절 장차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했지만, 그는 여전히 회심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브레이너드는 성경을 두 번 통독하면서 자신의 신앙이 율법주의적이며 자신의 노력만을 의존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에 반발하며 영혼 안에서 하나님과 격렬하게 씨름했으며, 특히 로마서 921절 말씀(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1739년 여름, 그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구원이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겉모습만 그럴듯했던 자신의 신앙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갈망이 아닌 자기 의에 불과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도 가운데 한 번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적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스물한 살의 어느 날, 해가 뜨기 30분 전 기도하기 위해 한적한 숲속을 거닐고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의 빛이 그의 영혼에 갑자기 쏟아졌고,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이 영혼의 지각에 활짝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광채를 보게 되었고, 이전에는 없었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존재를 보게 되어 말할 수 없이 기뻤으며, 이전에는 못마땅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구원의 길이 이제는 그의 영혼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탁월하신 속성에 완전히 매료되어 자신 같은 하찮은 피조물이 존재하는지도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 안에 깊이 침잠했습니다. 그는 우주의 왕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영예와 영광을 주되고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 즉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을 진심으로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두 달 후, 그는 목회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예일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후 선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등 고된 나날이 시작되었고, 홍역에 걸려 집에 내려가 있어야 했습니다. 174011월에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조지 휫필드가 다녀간 후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흥을 갈망하는 학생들과 이를 저지하는 학교 간의 갈등이 생겼고, 결국 브레이너드는 설교 강사에 대해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제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퇴교 조치는 브레이너드에게 큰 상처였고, 복학 노력은 모두 허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광야로 나가 고난당하며 선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하려는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목회자가 될 길이 막히기 전에는 인디언 선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침 하버드, 예일, 유럽 대학 졸업자가 아니면 코네티컷에서 정식 목회자가 될 수 없다는 법이 통과되어 그는 평생의 천직을 상실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들은 브레이너드가 영적으로 진보를 이루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기에 그리스도와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천 번의 삶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드리겠다고 기록했습니다.

 

17427, 브레이너드는 장로교 목회자 협회로부터 교리와 신앙의 체험에 대한 시험을 통과하고 복음을 전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인디언 부족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면서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는 이교도 가운데 그리스도의 나라가 전진하기를 기도하느라 땀으로 흠뻑 젖기도 했으며, 자신의 24번째 생일을 금식과 기도로 바치기로 작정할 만큼 기도의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교만을 자각할 때 회개의 기도를 하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거룩하심 같이 거룩하게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말을 타고 숲속을 지나가다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새로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면서 그의 관심은 오직 이방인들의 개종뿐이었으며, 이를 위해 살고자 했고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인디언 선교회에서 일꾼을 찾는다는 뉴욕 팸버튼 목사의 편지를 계기로, 브레이너드는 인디언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단했고 인디언 선교사로 임명되어 사우스버리 외곽의 숲속으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후 협회로부터 카우나움익 선교사로 정식 파송을 받았습니다. 174341, 25살의 브레이너드는 매사추세츠 주 카우나움익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통역자의 도움을 받아 1년 동안 설교했으며, 언어를 배우고 시편의 일부분을 번역했으며 인디언을 위한 학교도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역에 앞서 아침 일찍 일어나 숲에 들어가 기도와 묵상을 하는 것을 습관화했습니다.

 

초기 사역 2년이 넘도록 그는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해 고독하고 낙심되는 일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굶주림, 추위, 피를 토하는 어려움 속에서 험한 산과 계곡을 넘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습니다. 첫 선교지에서는 빵을 구하기 위해 10~15마일을 사람을 보내야 했고, 구한 빵은 먹기도 전에 곰팡이가 나거나 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먹는 음식은 주로 끓인 옥수수와 푸딩이었고, 짚 더미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는 숲에서 길을 잃거나 말을 도둑맞거나 식중독에 걸리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등 고난을 겪었으며, 벽난로 연기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하여 밖으로 나가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는 이 모든 역경이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버리게 하고 천국을 더욱 감미롭게 느끼게 해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위로와 큰 기쁨을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첫 번째 사역지에서의 실패를 뒤로하고, 그는 협회 명령에 따라 펜실베니아 주 델라웨어 강 근처 인디언 마을로 200킬로미터를 말을 타고 떠났습니다. 11일간의 여정은 목숨을 건 사투였으며, 밤에는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델라웨어 혹스 지역에 도착했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외로움과 고통뿐이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개월 동안 사투하며 복음을 전했지만 세 사람만이 관심을 보였을 뿐, 인디언들은 복음에 무관심했고 백인에 대한 적대감을 보였습니다. 그는 매일 5~10킬로미터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인디언들을 만났습니다. 이곳에서 폐결핵은 악화되어 머리, 얼굴, 치아, 가슴의 고통으로 기도조차 할 수 없었으며, 깊은 절망과 실의에 빠져 선교사를 포기하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1745년 여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가 나타나 많은 사람이 회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추장, 마법사, 인디언들이 그의 설교에 관심을 갖고 몰려들었습니다. 그가 말씀 전하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모임 위에 내려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듯했습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술주정뱅이, 살인자, 도둑질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눈물로 울부짖으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했습니다. 데이비드의 첫 열매는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통역을 돕던 술주정뱅이 통역자였습니다. 이러한 은혜의 소나기는 1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는 사람들의 편견과 방해 속에서도 2년 넘게 인디언 원주민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했던 눈물 젖은 기도의 열매였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인생의 가장 큰 십자가 중 하나는 끊임없는 병마였습니다. 그는 선천적인 폐 질환을 앓았으며, 1740년부터 피를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17445월에는 몸이 너무 망가져 피만 계속 나오는데도 말을 타고 황량한 광야를 지나갔습니다. 때때로 극심한 고통으로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밤새 식은땀을 흘리다가 아침에는 핏덩이를 토하고 격렬한 기침과 심한 열병에 시달렸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곧 토하기 일쑤였으며, 침대에 누워도 가슴과 등의 통증 때문에 편안히 쉬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가까스로 말을 타고 이마일 정도 떨어진 인디언 마을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또 다른 무거운 십자가는 평생 동안 시달린 절망적인 우울증이었습니다. 회심 이후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지탱했지만, 영혼 안에 남아있는 지독한 우울함으로 괴로워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인식이 너무 강렬하여 하나님의 임재에서 단절된 것처럼 느꼈고, 이 고통은 죽음보다 독하다고 기록했습니다. 낙심으로 인해 기운을 잃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때도 있었으며,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죽은 것 같고 냉혹하며 열매 없고 무익한 버림받은 자처럼 보이는지 당황스러웠다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그는 주변에 영적인 슬픔을 털어놓고 함께 기도할 그리스도인 친구가 없어 외로웠지만, 광야와 사역지에서 오직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집중했으며, 낙심 속에서도 사역이 필요할 때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브레이너드는 인디언들을 향한 사랑으로 마음이 녹아 말을 타고 가다가도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잠자리에 든 뒤에도 잠들 때까지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성화와 인디언들의 회심 확산이라는 자신의 고매한 이상을 능가하는 꿈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더욱더 거룩해지고 더욱더 쓰임 받고자 하는 자신의 열심을 '기분 좋은 고통'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고통을 통해 그의 영혼은 더욱더 하나님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와 금식을 중요하게 여겨 때때로 하루 종일 기도하거나 하루에 여섯 차례 기도 시간을 따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화와 인디언들의 회심, 그리고 온 세상과 미국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기도했습니다.

 

1746811, 그의 마지막 사역이었던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병은 깊어져 있었지만 인디언들을 향해 주께 돌아오라고 설교했습니다. 11월에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병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17475, 조나단 에드워즈의 집에서 의사들은 그에게 치료 불가능한 폐결핵이 남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일생의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당시 항생제나 진통제가 없었기에 그가 겪었을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17477월부터 조나단 에드워즈의 집에서 간호를 받았지만, 피를 토하고 때로는 혼수상태에 있으면서도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선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시키고 싶은 기대와 희망을 가졌으며, 마지막 임종 직전까지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중요한 수단인 부흥을 갈구했습니다. 결국 브레이너드는 1747109일 금요일 오후 6시에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브레이너드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일기가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에 의해 출판되면서부터였습니다.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출판을 결심했으며, 브레이너드 자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출판을 허락했습니다. 그의 일기는 미국과 영국에서 널리 읽히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그의 일기를 통해 삶과 사역에 큰 전환점을 맞았으며, 모든 설교자는 이 일기를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8세기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 19세기 선교에 영향을 끼친 헨리 마틴, 20세기의 순교자 짐 엘리어트 역시 그의 일기를 읽고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저명한 목회자 존 파이퍼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말릴 수 없는 외롭고 우울한 고통받는 젊은이를 택하셔서 수백 명의 인디언을 구원하고 프린스턴 대학과 다트머스 대학 설립의 길을 여는 등, 그의 철저하게 헌신적인 4년간의 선교 활동을 통해 향후 200년간 타오를 세계 선교의 불을 지피셨다고 평가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초인적인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질그릇처럼 연약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생애는 약하고 병들고 외롭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달라고 간구하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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