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말씀으로 행복하고 온전해지는 예수참영성원
이용도 목사의 생애 3부: 기도와 사랑으로 삶을 불태운 참목자
https://youtu.be/tq5u_No_M3s?si=-TTmZb5yYCWvd7cm
통천에서 사역하던 이용도 목사는 당시 유명한 불량배였던 박재봉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박재봉은 부흥회를 방해하며 소란을 피웠으나, 이용도 목사의 눈물 어린 기도에 감복하여 변화되었습니다. 이후 이용도는 박재봉과 함께 금강산 백정봉에서 10일간 금식하며 생사를 건 기도를 드렸고, 이 체험을 통해 그는 '생활하는 사람'에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거듭났습니다. 그는 새벽 기도 중 삼지창을 든 마귀의 환상과 싸워 이를 물리치는 영적 전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어록]
- "주여 저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 청년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 "아버지여 나의 혼을 빼어버리소서 그리고 예수에게 아주 미쳐버릴 혼을 넣어 주소서 예수에게 미쳐야 하겠나이다"
- "사탄아 물러가라 이 집은 아버지의 성전이니 물러가라"
이용도 목사의 생애 4부: 성령의 불이 다시 한반도에 임하시다
• 원산지방 부흥회 확산 • 피도수의 성령 체험 • 비판자들의 짐은
• 문제의식 예수님의 죽음 • 최초 평양 입성 • 평양 기도단의 태동
https://youtu.be/sORAw1lD8gE?si=ulj_5_YKbFC7TEIK
1929년, 이용도 목사의 사역지마다 강력한 성령의 불길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이 밟으신 길만을 따르기로 결단하며, 세상의 비판을 영광으로 여기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는 행정적인 책임보다 성령의 권고를 우선시했으며, 가르치려 하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만물로부터 배우는 겸비한 학생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또한 추운 겨울밤 거리의 거지 아이에게 자신의 이불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등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어록]
- "방황하던 나는 이제야 나의 길을 찾았나이다... 그 길이란 곧 예수님이 밟으신 길입니다"
- "나는 이제부터 아주 예수쟁이가 되렵니다. 미치도록 믿으려 하나이다"
- "내가 저희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저희가 나를 가르치는 선생이로다"
- "나는 텅텅 비었는데 무엇을 내놓습니까. 다만 당신의 감동대로 순종하려는 이 마음 하나밖에는 아무 자본이 없나이다"
이용도 목사의 생애 5부: 서울로 좌천
• 어린 양을 만나다 • 아우성 속에 엎드림
• 기독교의 제출발 • 그들이 찾던 목사 • 있는 것 같도 없는 생활
• 대안의 심장 서울에 떨어진 불 • 증인 변종호
https://youtu.be/32y3q0CZ0wU?si=k7UVs22Onla2eUrw
이용도 목사는 서울 주일학교 연합회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형식주의에 젖은 교계를 향해 기도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충북 영동에서는 굶주린 소년 최혁성을 만나며 현대 교회의 무관심을 꾸짖었습니다. 황해도 재령 부흥회에서는 목이 완전히 쉬어버린 상태에서도 손짓과 땀방울로 복음을 전하는 '무언 설교'를 통해 수많은 회개를 이끌어냈으며, 이때 그의 사역을 평생 증언하게 될 변종호를 만나게 됩니다.
[어록]
- "사랑은 곧 생명이라 사랑 없는 신앙은 생명 없는 신앙이니라"
- "네가 신앙의 소유자냐 그러면 너는 사랑의 소유자가 될지어다"
- "무언 겸비 기도"
- "나는 이 집 식구라기보다 주님의 종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생애 6부: 진리의 심판을 받으라
• 기도동무 어깨동무 • 간도 위에 임하소서
• 용정과 연기 집회 • 의인의 피와 살 • 덫
https://youtu.be/NG5L2Hm_KVI?si=quNeaM4r4LpFmkmm
거창 부흥회에서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를 기다리며 침묵했던 이용도는 마침내 임재하신 성령의 불길로 평화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는 한반도를 넘어 만주 간도까지 찾아가 이호빈 목사와 함께 사역하며, 헐벗은 동포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평양 남문박 교회 집회에서는 '의인의 피와 살'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교권주의에 물든 교회를 질타하며, 오직 예수님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만을 강조했습니다.
[어록]
- "다만 무(無)가 되라 공(公)이 되라 그 위에 우리 주가 역사하시느니라"
-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나의 일을 없는 미련한 자로소이다“
(이용도 목사는 주님을 온 천하보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기를 원했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나의 일을 없는 미련한 자"라는 표현은, 자신의 주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나 깊고 강렬하여 인간적인 지각이나 계산으로는 그 깊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신의 사랑조차 스스로는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주님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예수의 살과 피를 보기 전에 저희가 회개하고 믿었던들 좋았을 것을... 의인들은 피와 살로 새 언약의 표를 삼았느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가르침과 이적을 통해 복음을 전하셨지만, 사람들이 너무나 교만하고 완고하여 말이나 이적만으로는 회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리는 십자가의 희생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즉, 그런 끔찍한 희생을 보기 전에 미리 겸비하게 믿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며, 의인들이 자신의 생명(피와 살)을 바쳐 언약의 증표를 삼은 것은 결국 인간의 완고함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 "의인들의 피와 살은 염가의 것이 아니니라"
(의인의 피와 살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니며,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치러진 가장 귀하고 엄격한 대가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토록 고귀한 희생을 목격하고도, 혹은 그 복음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인간은 그에 상응하는 영원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을 가볍게 여기거나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향해, 의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고 진실하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입니다.)
이용도 목사의 생애 7부: 올 것이 오다 • 평양을 흔들다 • [어록] • 선의 존경
https://youtu.be/bKH6_-c6PLE?si=Au4hgHSM9wKed00y
협성신학교 부흥회에서 학생들은 기도의 불을 체험하고 밤새 무학산에 올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기는 학교와 교회 지도부의 반발을 샀고, 아연 성결교회에서는 집회 중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황해노회는 이용도를 무교회주의자로 정죄하며 금종령을 내렸습니다. 이용도는 절망 속에서도 "소자야 안심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금 순종의 길을 다짐했습니다.
[어록]
- "우리의 전 책은 기도에 있고 우리의 무기는 무언의 눈물에 있을 따름이다"
- "나는 무교외주의 설에 있어 변호하고 싶지 않습니다"
- "세상이 너를 버린다 하여 너는 슬퍼하느냐... 나는 너의 하나님이요 너의 구주로다"
이용도 목사의 생애 8부: 기도와 사랑으로 삶을 불태운 참목자
https://youtu.be/Do-cTu6Gdvo?si=cgG-E9rCZMqMqJ5E
1931년 말, 이용도 목사는 다시 평양을 방문하여 명촌교회와 신암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수천 명의 성도가 무릎 위에 사람을 앉힐 정도로 가득 모였고, 예배당은 땀과 눈물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평양노회는 이용도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보이며 그의 집회를 금지하는 악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용도는 육신의 쇠약함 속에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며 기도로 버텨냈습니다.
[어록]
- "의지하세 의지하세 주 의지하세 구하시네 구하시네 곧 구하시네"
- "신앙에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 "나와 같이 앉았다 누웠다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모르겠어"
이용도 목사의 생애 9부: 김인서와 이별 • 교회를 사랑하여 사람을 죽이는 모순
https://youtu.be/DAW13Hb5hjk?si=cugpmH8ZzZceht9M
원산의 한준명 장로가 평양에서 예언 문제로 소동을 일으키자, 교계는 이를 이용도 목사와 연결해 그를 매장하려 했습니다. 이용도는 한준명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권고를 거절하고, "쫓기는 자를 거두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며 그들과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이로 인해 평양의 유력한 동지였던 김인서 장로와도 신앙적 노선 차이로 이별하게 되었고, 그는 더욱 철저히 고립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어록]
- "나는 쫓기는 자를 거두어 그들과 함께 오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 "오 나의 입수라 너는 삶과 자중하라 가벼이 사람을 이름 짓지 말자“
(이 구절은 세상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낙인찍을 때, 신앙인은 부화뇌동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을 두려워하며, 끝까지 사랑과 인내로 침묵해야 한다는 이용도 목사의 무저항 사랑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 "너희 원수 앞에 사랑과 겸비와 인내를 잃지 마라. 이 셋은 너희의 무기임에 빼앗기지를 말라"
이용도 목사의 생애 10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곁으로
https://youtu.be/0LQ9m-p6nxA?si=3O21R2tRbjkpUexd
교회에서 쫓겨난 성도들을 위해 이용도 목사는 1933년 6월 6일 '예수교회' 창립을 선언했습니다. 해주 집회 중에는 반대하는 청년들에게 구타를 당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추운 겨울밤 신발도 없이 얼음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원산으로 돌아온 그는 1933년 10월 2일, "새 노래 함께 부르세"라는 찬송 속에 3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끝까지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의 친구로 남은 성자의 최후였습니다.
[어록]
- "주께서 결국 다 이기실 것이니 그저 속으로 기도하십시오"
- "내 눈을 보십시오. 죽는 눈이 이런 것을 보았습니까"
- "형님 처자를 엎는 듯이 하고 주님만을 위해 살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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